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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중국거주 조선족 무차별 납치

마니쏘리 2010. 6. 12. 12:40

 

 

 

북한 정보기관에 의한 중국인 납치

 

서론

 

지금까지 북한에 의해 납치된 외국인은 주로 일본, 한국, 일부 동남아 국가들의 민간인이었지만 사실상 북한에 의해 가장 많은 사람들을 납치당한 국가는 중국이다.

동맹국을 넘어 혈맹국가를 자처하는 북한이 이웃나라 중국인들을 무차별적으로 납치하게 된 이유는 중국의 개혁-개방정책과 무관치 않다.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지면서 중국지도부에 대한 김일성-김정일의 분노가 극에 달했고, 1997년 황장엽 전 노동당비서가 망명할 때에도 중국은 황 씨를 북한이 아닌 제 3국행을 허용함으로서 중국에 대한 북한의 신뢰도는 거의 떨어지게 됐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두 국가의 경제적 격차를 벌려놓았고, 모든 면에서 질적으로 다른 국가로 변하게 됐다. 북한은 수령 독재가 극에 달했고, 중국은 개혁개방으로 경제적 눈부신 발전과 일정부분 자유를 주민들에게 허락하면서 중국과 북한은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됐다.

이는 북한이 가장 경계해야 할 국가가 미국과 일본, 한국이 아닌 중국으로 바뀌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도 김정일이 미국, 한국, 일본 등을 욕하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지만 중국에 대해서는 입만 열면 헐뜯었다는 것이다.

한미일 세 국가는 적대 국가이지만 북한정권의 체제변화를 요구하지 않았지만 중국은 북한에 대해 지속적인 개혁개방을 요구했다. 이는 북한의 체제변화를 요구하는 것으로 중국의 개방 압력은 북한에 가장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적대국인 남한은 군사분계선으로 막혀있지만 중국과 북한과의 국경은 두만강과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때문에 중국의 변화와 함께 북한내부에 침투하는 자유주의 바람은 북한 당국이 가장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말 대기근으로 수백만이 아사하자 많은 탈북자가 발생하게 됐고

이로 인해 북한의 국가보위부가 중국을 상대로 공작을 단행하지 않을 수없게 됐다.

이러한 배경이 중국인 납치자들을 발생하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 됐다.

 

1. 중국인 납치자 주범은 국가보위부

 

■ 중국과 기타국가들의 납치 공작원들의 차이점

일본인 등 다른 국가의 납치자들은 북한의 주요 공작기관인 35호실, 대외연락부, 작전부 등 북한의 전통적인 공작부서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자행됐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납치자의 주요 목적은 대외공작에 필요한 교육 및 공작원들을 위한 것이었다.

 

납치자들은 주로 첩보기관의 교관이나 교원 역할을 하게 됐다.

하지만 중국 납치자들은 공작기관이 아닌 국가보위부에 의해 자행됐다.

중국에서 끌려오는 사람들은 일본이나 기타 국가와 같이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끌어온 것과는 달리 중국인들은 국가보위부에 의해

계획적인 표적 납치를 했다는 점이다.

 

과거의 납치는 전략적 목표에 의해 북한이 주도적으로 벌였다면 중국인 납치는 체제수호를 위한 방어적 입장에서 벌어진 것으로 풀이될 수있다.

국가보위부와 기타 공작기관들은 역할이 다르다.

 

국가보위부는 체제 내부와 북한주민들을 상대로 활동하지만 대외공작기관들은 대외첩보를 위해 공작한다.

따라서 북한보위부가 해외 납치에 가담하게 된 것은 북한 체제를 반대하거나 그와 유사한 행동을 하는 북한인과 그와 연계된 중국인들을 불법적으로 끌어와 조사를 벌이면서 시작되게 된다.

 

■ 초기 중국인 납치의 성격

 

-초창기 북한의 보위부는 중국인들을 아예 납치하는 것보다 북한내부인과 연계돼 엄중한 문제가 있을 경우 북한으로 납치해와 조사를 벌인 후 석방시켜왔다. 하지만 대외관련 문제가 복잡해지고 중국 공안당국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북한이 끌어온 중국인들은 대부분 중국에 보내지 않고 있다.

 

-북한이 중국인을 납치해오는데 결정적 이유는 반북활동이다.

 

반북활동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탈북자들을 돕는 행위다.

두 번째는, 북한내부의 정보를 빼내 남조선 등 국외정보기관에 팔아넘기는 행위다.

세 번째는 북한내부의 반정부 세력과 협조하는 자들이다.

대외정보기관들의 대북침투 활동이 강화되면서 북한에 침투하기 위한 중간 거점으로 중국을 활용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많은 중국인들이 북한내부와 연계될 수 없기 때문에 북한 보위부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2. 중국인들의 납치과정과 공안당국의 고민

 

■ 중국인들은 대부분 중국거주 조선족들이다.

 

납치과정은 대부분 북한내부에서 활동하는 북한인들이 먼저 체포되면서 발생한다.

북한보위부는 북한내부에서 반북활동을 하는 북한인을 체포하면 고문을 통해 대외와 연계된 뿌리를 캐게 되는데 여기서 혐의가 입증된 중국인들은

 

체포된 북한인을 활용한 유인을 통해 납치하게 된다.

-납치자 대부분은 북한내부와 연계된 북한주민들의 호출에 의해 국경지역에 나갔다가 매복해있던 보위부에 의해 납치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 납치자들에 대한 중국정부 입장

 

- 북중 국경지역에서 발생하는 납치자 문제는 중앙정보에 보고조차 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지 공안당국은 국경지역에서 행불된 사람들이 북한에 의해 끌려갔을 경우

초기조사와 함께 북한당국에 수사협조를 하기도 하며, 북한에 의해 끌려간 것이 확인될 경우 북한 측에 공식적인 송환요청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 북한 측이 막무가내로 혐의사실을 부인하거나 거부하면

더 이상 북한에 대해 압력을 넣을 수단이 없어져 피해자 가족들은 국가는 물론 그 어디에서도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현지 공안당국은 납치자 문제를 중앙정부에 보고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유는 아직 중국 자체가 인권문제에 큰 관심이 없고, 북한이라는 특수 관계 때문에 개인들의 인권문제를 무시하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됨

 

국경지역에서 사라지는 대부분 사람들은 조선족이기 때문에 국경지역에서의 분쟁은 민족문제로 보는 경향도 있다.

 

또 한족이 아닌 조선인들 문제이기 때문에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상당수 조선족들은 북한에 친척을 두고 있기 때문에 북한 보위부는 재중 조선족들을 중국인이기는 하지만 조선인으로 취급하면서 함부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납치자 사례

 

납치자 이성광씨

 

탈북자연합단체인 북한민주화위원회가 중국 창바이현(長白縣)정부 및 가족 등으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보면 북한에 의해 강제납치된 중국인은 조선족 이성광(44)씨로 납치 당시 중국 지린성(吉林城) 창바이(長白)현 팔도구 보건소 운전기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그에게는 부인과 딸이 남아 있다.

이성광.JPG

 중국거주 조선적 이성광씨. 납치당하기 전 모습

 

 

중국 공안이 이씨의 납치 상황을 조사한 기록에 따르면 그가 납치된 시점은 1998년 3월 6일 18시로 돼 있다.

당시 이 씨는 지린성 창바이현 팔도구 소재 압록 강변에서 북한 경비병과 밀무역을 하기 위해 접촉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씨의 작은 배에는 담배 10보루와 중국 술 한박스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 측으로 도강(渡江)해온 북한 국경 경비대원 4명은 다짜고짜 이씨를 폭행하고 팔도구 앞 북한 김형직군(옛 후창군)으로 자루에 담아서 북한에 끌어갔다고 한다.

당시 이씨의 친구 김덕규(조선족ㆍ창바이현 거주)에게 한차례 전화가 걸려왔지만, 곧 두절된 후 현재까지 아무런 소식도 없다.

 

피랍 직후 중국 공안당국은 가족들의 신고에 따라 이 사건을 조사하고 북한 측에 신병인도 요청을 했으나 양강도 혜산시 도(道)보위부 감옥에 있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신병 인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 이후 가족들은 중국 공안당국에 이씨의 석방을 요구했지만, 북한 보위부는 자신들은 이 사실을 모른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한다. 이씨가 북한에 끌려가게 된 이유는 고위탈북자 등 북한주민의 탈북을 도운 혐의를 받았다고 한다.

 

납치자 이기천

 

2008년 4월경 재중동포 이기천(42)도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납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북중(北中) 국경지역인 연변조선족자치주 카이산툰에 거주 중이던 이씨는 10년째 탈북 브로커를 전문으로 하고 있었다. 그는 북한 내부의 지인 김씨와 짜고 탈북자들을 안전하게 북중 국경에서 옌지(延吉)까지 안내하는 일을 도맡아 왔다.

 

어느 날 이씨에게 북한에서 함께 일하는 김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물건이 도착했으니 두만강 앞에 나오라”는 연락이었다.

 

그는 주저 없이 차를 몰고 두만강 앞에 나갔지만 이미 매목하고 있던 보위부 요원 6섯명에게 제압당해 북한에 끌려갔다고 한다.

 

이씨와 함께 일했던 김씨는 이미 북한 보위부에 잡혀 다리 힘줄이 끊어져 있었고 보위부의 각본에 따라 이씨를 유인하기 위해 두만강 앞에서 보위부의 입회하에 전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의 부인은 북한 내부의 지인을 통해 북한 보위부가 중국 돈 40만 위안(한화 약 8000만원) 내면 살려줄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돈을 빌려서라도 석방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안돼 결국 공안 당국에 신고했다. 중국 당국은 북한 측에 이씨의 석방을 요구했지만, 북한은 “그런 자에 대한 모든 것은 일제 모른다”고만 답변했다고 한다.

 

납치자 강국씨

 

북한 함경북도 무산군 앞 중국지역인 호곡에 거주하던 강국(45)씨도 2005년 11월경 납치됐다.

 

그는 호곡 지역에 술집을 차려놓고 그곳에 북한여성들을 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짜 북한아가씨를 보려면 호곡에 가면 된다는 소문이나 강씨의 가계는 한국 손님들까지 찾아올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하지만 무산군 보위부는 강씨의 이런 행위를 반(反)공화국 책동으로 규정짓고 2005년 겨울 보위부 요원 4명을 호곡으로 비밀리에 급파해 술에 취해있던 강씨를 자루에 담아 북한에 끌어갔다고 한다.

 

탈북자 강건씨와 연계된 화교 1명도 납치

탈북자 강건 씨를 도왔다는 죄로 중국인 화교 1명도 지난 2005년 3월 중국 단둥(丹東)에서 북한 보위부에 의해 납치됐다.

 

※ 중국 조선족 자치주 장백현 중국 공안관계자에 따르면 19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장백시를 비롯 장백현 인근에서 북한에 끌려가 행방불명된 중국인은 약 1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양강도 혜산시와 후창군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 지역은 과거 북한 주민들과의 밑바닥 거래가 가장 활발했던 지역이며, 양강도 혜산시는 반정부 활동 등으로 가장 많은 북한주민들이 처형당한 지역으로 알려지고 있다. 좁은 압록강을 사이로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 보위부의 활동도 가장 활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