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만 구경할 수 있는 풍물(?)이라면 양복을 쪽 빼입은 남자에서부터 군복을 입은 남자에 이르기까지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광경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20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이런 젊은 아빠들을 보고 50~60세가 넘은 세대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자신이 젊었을 때 이렇게 유모차를 밀고 다녔으면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리라’는 것과 ‘자신들도 이렇게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아이들을 보살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것.
하지만 지금 스웨덴에서는 아기를 키우는 입장의 아빠들이 오히려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현실적이든 내적인 이유든 직장을 비롯해서 여러 여건을 극복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미 실력을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의 ‘비로드 파파’와는 달라
예전에는 이곳에서도 유모차는 역시 능력 없는 남자와 연관되는 상징이었다. 예를 들어 아빠들이 적극적으로 아기를 보살피게 됐을 때, 이런 부류를 일컫는 ‘비로드 파파’란 유행어가 있었다. ‘편안한 비로드(Veludo : Velvet) 천으로 만든 바지를 입은 아빠’ 라는 의미인데, 아이를 돌보기 위해 편한 바지를 입은 아빠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유모차를 끄는 아빠, 즉 집에서 아기를 돌보는 아빠는 시대적인 요구에 따른 변화로, 이들이 추구하는 사회의 이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스웨덴은 일찍이 언론 자유, 인권 권리, 이런 낱말들과 연관되는 사회적 방침이 발달했고‘남녀 평등’하면 세계에서 선구자적인 나라로서, 어려운 과제가 따르는 이 이념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스톡홀름은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이 어우러진 빼어난 경치가 인상적이다. 이곳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주는 곳이 바로 국회의사당 입구다. 이곳의 주변은 싼 관광기념품 상점들이 즐비하고 관광 명소인 구시가지에 이르는 길까지 지나고 있어 일반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항상 북적댄다. 또 바로 옆 수상 관저 앞에는 언제나 낚시하는 사람들이 몰려 있어 이 지역이 스웨덴 정치의 중심지라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권위주의 없는 스웨덴의 현상
이처럼 권위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찾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이곳 스웨덴이다. 이 나라는 남녀가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일상생활 속에서 꾸준히 노력해 왔다. 자신들에게 가장 알맞은 방법을 찾아 수정을 거듭하고, 새롭게 제시되는 결과를 바탕으로 하나씩 열매를 얻고, 이로써 얻어지는 자유에 대한 권리를 소중하게 간직한다.
자유, 평등 그리고 이에 따르는 책임의식을 배운 이곳 젊은이들은 오히려 결혼을 인간 개개인의 자유를 속박시키는 제도로 인식해 상당수가 복잡한 절차가 필요 없는 동거를 선택하고 있다. 그러나 남녀평등에 대한 의식만큼은 확실해 가정에서는 각자의 역할 타협을 통해 부부간 약속을 지켜나간다. 따라서 이러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헤어지는 원인이 된다. 헤어지더라도 아이가 14세가 될 때까지는 부모와 함께 살면서 양쪽 부모의 보살핌을 받게 돼 있어 부부는 기본적으로 일주일씩 번갈아 가면서 아이를 키우게 된다.
아이를 낳고 금방 헤어지는 커플도 많은데, 그럴 바엔‘애초부터 아이를 낳지 말지’ 싶기도 하지만, 실은 낳기 전에는 사이가 괜찮았다가 아이를 낳은 후 갈등이 생긴 경우들이다. 생전 처음 아기를 키우다 보면 신경이 예민해지고 스트레스를 받아 서로에게 불신감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기가 한 살도 안돼 헤어질 경우 아빠도 엄마 못지않게 자녀를 보살펴야 한다. 하지만 아기가 너무 어리면 어쩔 수 없이 엄마 쪽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된다.
헤어지더라도 아이 양육은 의무
이곳 젊은 엄마, 아빠들은 이렇게 새로운 배우자를 만나기 전까지 혼자서 산다. ‘어바우트 보이(About Boy)’라는 영화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스웨덴 남자들도 이런 문제를 놓고 고민을 하고 힘들어하기도 한다. 그러나 잘 갖춰진 유아원시설과 초등학교 방과후 자유학습제도들 덕분에 비교적 잘 극복해 나간다. 사실 스웨덴의 남녀평등 역사는 오래됐지만 혼자 사는 아빠들이라든지, 아빠들의 적극적인 양육은 언급했듯이 최근에 일어난 현상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빠들은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 지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런 내용을 담은 서적들이 출판되기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경험을 담은 아빠들의 수기가 속속 출간되고 아버지들끼리 경험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아빠들 협회도 생겨났다.
놀이터에서 아빠들이 무리 지어 앉아 있는 모습, 편의점에서 젊은 아빠가 우유를 데우기 위해 점원에게 부탁하고 우유병에 손가락을 넣어 온도를 재는 모습은 여자들이 소위 잔소리라는 것을 왜 하는가에 대한 답변이라 할 수 있다.
<이경혜 / 스웨덴 거주 자유기고가>
▶서울~프라하 대한항공 주 3회(월·목·토) 운항 (11시간 40분 소요)
▶프라하~스톡홀름 체코항공 공동운항편 주 8회 (화·토 제외) 운항 (2시간 소요)
거리에서 만난 스웨덴의 아빠들
■ 요리도 바느질도 척척=패트릭 린드로스(Patrik Lindroth)의 아버지는 잘 알려진 경시청의 감사관으로 아주 유명했지만 패트릭은 아버지와의 긴밀한 유대감이 없이 자랐기 때문에 자신은 아빠 역할을 충실히 하고자 노력한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그는 요리에도 능숙할 뿐 아니라 바느질도 잘한다. 이같은 스웨덴의 적극적인 아빠 역할은 아빠들이 자신의 아버지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일종의 심리 치료적인 역할도 하게 된다.
■ 매일 저녁시간·주일은 아들과 함께=만화가 요나 다넬(Jonas Darnell)의 3살난 아들 안톤(Anton)은 아빠가 일을 마치고 데리러 오기 전인 오후 5시까지 유아원에서 지낸다. 5시 이후 안톤은 아빠의 시간을 독차지한다. 때로는 유아원에 가는 대신 아빠의 작업실에서 아빠와 함께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요나는 그림과 이야기를 만드는데는 천재적인 기질을 지닌 인기 만점의 만화가다. 그러나 요리에는 별로 취미가 없는 관계로 안톤과 함께 하는 저녁식사는 주로 소시지나 빵 등 간단히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안톤의 취침시간은 저녁 9시이고 모든 스웨덴 부모들이 그러하듯 자기 전에는 꼭 책을 읽어준다. 아이를 돌보는 주일에는 저녁 약속은 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 때론 친구, 때론 아빠처럼=패트릭 노만(Partrik Norrm an)은 8살 딸 비양카(Bianca)와 4살된 아들 야스퍼(Jasper)와 살고 있다. 만화가인 패트릭은 요나와 친구인데 요나와는 달리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고 음악 연주 등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어 패트릭의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