陽坡(양파)의 풀이 기니 봄빗치 느저 잇다
小園 桃花(소원 도화)는 밤비예 다 피거다
아희야 쇼 됴히 머겨 논밭 갈게 하여라 辛啓榮
농가의 봄날은 이렇게 온다.
양지녘 언덕에 햇볕이 따뜻하고,
그 볕에 봄풀은 웃자랐구나.
간밤 비 맞아 복사꽃이 활짝 피니,
집집마다 논밭에선 쟁기질이 한창이다.
아침에 소를 든든히 먹여 아이를 재촉하여 들로 나간다.
오늘은 비 개거냐 삿갓에 호미 메고
베잠방이 걷오추고 큰 논을 다 맨 후에
쉬다가 점심에 탁주 먹고 새 논으로 가리라 金兌錫
그리하여 또 여름이 오고, 장마비 그치자 햇살이 짱짱하다.
그새 논밭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삿갓 쓰고 호미 메고 김을 매러 나간다.
베잠방이를 활씬 걷어 붙이고,
댓바람에 큰 논의 김을 다 매고 나니,
어느덧 등에는 흐믓한 땀이 배이고 배에선 꼬르륵 시장기를 느낀다.
때맞춰 집에서는 새참을 내온다.
나무 그늘에 앉아 한땀을 들이고,
탁주를 반주로 배불리 밥을 먹고 다시 새 힘을 얻어 새 논에 김매러 간다.
올여논 물 실어 놓고 棉花(면화) 밭 매오리라
울 밑에 외를 따고 보리 능거 점심하소
뒷집에 빚은 술 익었거든 차자나마 가져오세 李鼎輔
마른 논에 넘치도록 물을 실으니,
올벼에 아연 생기가 돋는다.
이제는 목화밭에 김을 맬 차례구나.
그리고는 울 밑에 덩굴진 외를 따야지.
겉보리를 찧어내어 보리밥을 한솥 해서
고추장에 외를 찍어 한 입 가득 베어 문다.
이 때에 한잔 술이 없대서야 말이 안돼지.
뒷집에 새로 빚은 술이 익었다더냐.
외상일지라도 몇 잔 술을 안 마실 수 없구나.
잔 들고 혼자 앉아 먼 뫼를 바라보니
그리던 님이 오다 반가움이 이러하랴
말씀도 웃음도 아녀도 못내 좋아 하노라 尹善道
혼자 마시는 술이 좋을 때가 있다.
무연히 먼 뫼를 동무 삼아 마주 앉았다.
한사발 들이키고 산을 한 번 올려본다.
꿈에 그리던 님이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듯
반가운 청산이 마당으로 들어선다.
웃기도 그렇고 할말도 없지만
`자네도 한잔 받게`
철철 넘치게 한잔 따라 청산 쪽으로 돌려 놓는다. 흐믓하다.
술을 취케 먹고 오다가 공산에 자니
뉘 날 깨우리 천지 즉 금침이로다
광풍이 細雨(세우)를 몰아 잠든 나를 깨우다 趙浚
비틀비틀 취한 걸음은 가눌 길이 없는데,
빈산을 깔고 누워 잠이 들었다.
깨우지 마라 이 포근한 잠을.
그 꼴을 보다 못해 심술이 난 일진광풍이
자는 내 이부자리 위로 보슬비 한줌을 뿌리고 간다.
비로소 정신이 든다.
여기는 어딘가.
나는 누군가.
거나한 술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이렇듯 꿈속같이 아련하다.
몸은 천근만근 말을 듣지 않고,
마음은 두둥실 떠올라 도도한 주흥을 가눌길 없다.
똑바로 걷는 걸음이 자꾸만 헛감기고,
그러는 사이에 날이 저문다.
다음 시는 바로 이런 정황을 노래한 것이다.
不知醉行緩 但道歸路長
불지취행완 단도귀로장
寒鴉亦何事 山外是斜陽
한아역하사 산외시사양 백광훈
취한 걸음 더딘 줄 몰랐었는데
갈 길이 멀다고 말을 하누나.
갈까마귀 너는 또 무슨 일이냐
산 밖엔 어느새 석양이예요.
낮술에 발갛게 취한 걸음이 갈지자로 놓인다.
다급해진 종놈은 자꾸만 곁에서 갈 길이 멀다고 쫑알댄다.
갈까마귀마저도 서두르라 우짖는다.
3.4구는 문답이다.
"네 이놈! 까마귀야 조용히 해라."
"빨리 빨리 서둘러요. 밤이 옵니다."
불이 그 안에 깃들어 있는 물이 곧 술이니라.
그래서 마시면 가슴이 타느니라. 물은 없어지고
불만 남느니라. 그 불 속에서 푸드득 한 마리
새가 날아가야 불은 꺼지고 아침이 되느니라.
박희진 시인의 〈술〉이란 작품이다.
물 속에 불이 들어 있는 것이 술이다.
멋진 표현이 아닌가.
그래서 술을 마시면 가슴에서 불이 난다.
물을 마셨는데 불이 나는 것이 술이다.
그 불을 끄려면 그 불 속에서 푸드득 새 한 마리를 꺼내
아침 하늘에 날려 보내야 하리라.
선문답 같다.
그런데 도도한 주흥은 환한 아침이 되었다 해도
좀체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자료출처 : 鄭 珉 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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