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팔랑펜션(해발 700)/팔랑계곡

지리산 팔랑마을을 찾아서

마니쏘리 2010. 9. 6. 00:21
지리산 팔랑마을을 찾아서| .....자유 게시판
유진사랑 조회 34 | 2009.12.17. 23:10 http://cafe.daum.net/cssanlove/4X3Z/1569

지리산 팔랑마을을 찾아서

 

어느새 계절은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나 보다. 보이는 것 모두는 화려함을 털어 낸 채 단조로운 회색 톤으로 바뀌어 진지 오래다. 이제 화려했던 지난 일들을 안으로 곰삭이고 있는 이때를 사람들은 외로움의 계절이라고들 한다. 외로움이 마음 한 곳에 자리하면 누군가가 그리워지고 그리움이 깊어지면 그리움을 찾아 나서기 마련이다. 그 그리움의 대상이 사람이라면 사랑일 테고 자연이라면 여행이 될 터이다.

 

그래서 겨울여행은 악연일망정 평생을 털어 내지 못한 채 부둥켜안고 살아 왔던 그리움을 찾아 떠나는 일인 줄도 모른다. 사람들은 눈이라도 내릴 것 같은 스산한 날이면 산굽이를 돌거나 겨울 바닷가를 거닐거나 호젓한 암자를 찾아 집을 나선다. 솔바람 소리, 파도소리. 돌돌거리는 겨울 물소리를 들으며 추억에 묻힌 옛 그리움을 되새겨 보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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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에도 겨울이 내려 앉아 있었다. 구불거리는 성삼재 길을 올라 달궁으로 넘어가자 계곡엔 잎들을 털어버린 겨울나무들이 산 그림자에 묻혀가고 있었다. 나무들은 앙상했고 떨어진 잎들은 을씨년스럽게 굴러 다녔다. 굴뚝 연기가 피어오르는 허름한 상가 처마에는 탐스럽고 고왔던 빛깔을 잃어버린 곶감들이 매달려 있었다. 사람도 세월이 지나며 저러하거늘~~~

 

뱀사골을 지나 반선으로 향하다 보면 왼쪽 언덕배기에 화려한 철쭉꽃을 배경으로 ‘팔랑마을 입구’라는 간판이 서있다. 이름이 정겹다. 급히 핸들을 꺾어 돌아 오르니 좁은 시멘트 길이 산자락을 타고 구불거리며 이어진다. 두 대가 비켜가기에는 오금이 저릴 만큼 협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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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틀거리며 몇 굽이를 돌자 건너편 산자락에 마을이 보였다. 늦은 오후 따사한 햇살을 받고 스무나무 채, 잘 가꾸어진 집들이 비탈에 기대어 옹기종기 어깨를 마주대고 있었다. 바삭 이며 스러져 갈 것 같은 산골마을이 아니었다. 어느새 이곳도 대한민국 특유의 획일화된 마을 모습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산골의 정겨움 느끼고자 찾았던 기대감은 실망으로 가득찼다.  

 

 

길가에서 겨울 땔감으로 쓸 잔챙이를 거두던 초로의 할머니를 만났다. 주름진 고운 얼굴을 보자 남들이 겪지 못한 힘든 세상을 살았을 것 같은 모습이 배어 나왔다. 겨우 허리를 펴며 길가에 세워진 빨간색 소형차 곁에 서더니 사진을 찍어 달란다. 왕초보 할머니차란 글씨가 보이도록 말이다. 이 깊은 산골에 사는 할머니가 손수 차를 운전 하다니 첫 만남치고는 의외였다.

 

할머니는 시집 온 후 내내 이곳에서 살다가 아이들 가르치러 도회지로 나갔더란다. 삼십년 만에 다시 돌아와 스러져 가는 집을 세우고 다듬어서 할머니민박을 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건너편 산자락을 가리키더니 내년 오월에 와서 고사리를 끊어 가란다. 지난 날 가꾸어 먹던 논밭에는 온통 마른 고사리가 누렇다. 둘러보니 이 곳 사람들의 유일한 소득원인 고사리 밭이 지천이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 몇 장 더 찍고는 마을 쪽으로 향했다.

 

팔랑마을은 지리산 서북릉 깊은 산골 해발 700m 지대에 위치한 전형적인 산골마을이다. 마을 뒤로 정령치에서 바래봉까지 이어지는 중간에 팔랑치가 있어 얻어진 이름이나 보다. 예전엔 팔랑치를 넘어 남원 운봉과 삶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마을 산자락 건너에는 삼정산, 반야봉, 노고단 등 지리산 준령의 봉우리들이 등을 보이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복두꺼비 바위가 마을을 지키고 있는 듯 앉아 있었다. 그 아래에는 여덟팔(八) 사내랑(郞)들이 선녀들과 함께 목욕을 했다는 선녀탕이 푸른 물을 안고 있었다. 전에는 이름 그대로 아들을 많이 낳은 마을로 이름났을 때도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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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을 지키는 복두꺼비, 바로 아래는 선녀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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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정밭에는 이 마을의 유일한 소득원인 고사리가 누렇다

 

다리를 건너자 잘 가꾸어진 민박집들이 반겼다. 많던 사람 다 떠나가고 이제는 일곱 가구 토박이들이 민박을 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골목을 돌아 오르자 민속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초가집이 눈에 들어 왔다. 대를 얽어 만든 창호지방문 위에는 잘 쓰인 예서체의 채옥산방(採玉山房) 액자가 앞산에 걸린 햇볕을 받으며 아담하게 걸려 있었다. 채옥이라~~ 아까 오르며 만났던 할머니가 김채옥이라 더니 아마 그분이 사는 집이나 보다. 아래 할머니 민박을 운영하면서 말이다. 이 초가집 한 채가 없었다면 오늘 찾은 팔랑마을은 헛걸음이었을 것 같다.

 

벽에 걸린 시계는 정오를 못 미쳐 서 있는지 오래고, 마루의 노랑 라디오에서는 조울 듯 느린 음악이 흘러 나왔다. 오지에 산다는 것 자체가 멎은 듯 느림이고 온통 그리움이겠지. 그 것도 한 순간이 아니라 질기도록 이어져 온 삶의 연속이자 평생을 기다리며 살아야 하는 운명이기도 할 것이다. 기다리다 지친 저 벽시계와 끊어질 듯 흘러나오는 느린 음악에서 이 산골의 외로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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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생활이란 아니 산골 사람들은 산굽이 길을 내려다보며 누군가 올 거라는 믿음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멀리 타향에 살고 있는 자식들이거나 그냥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그나 간에~~~ 나이 먹은 감나무에 까치밥 남겨두고 울어대길 기다리는 삶인 줄도 모른다. 그러다 행여 찾아오는 사람이라도 있는 날엔 어느새 하나가 되어 속내를 털며 따뜻한 정을 주고받는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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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발치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습이 정겨워 대문도 없는 마당으로 들어서니 아주니 한 분이 불을 지피다 오래 기다렸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약을 대리는 장작불 아궁이에 넣어 두었던 고구마를 꺼내 먹으며 어둠이 내리고 있는 산골의 인정에 끌려 얼른 일어서지 못했다. 산골의 삶 자체가 외로움과 그리움이어서 이들에게는 순간의 만남도 소중한 인연일 것 같아서 말이다.

 

앞산에 해가 지고 어둠이 서서히 내릴 때 즘,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가슴에 담아오던 고향 같은 따뜻한 정 때문인지 아니면 그리움과 아쉬움 때인지는 몰라도 자꾸만 뒤돌아보게 했다.  

 

                               2009. 12. 13 Fo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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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팔랑마을은 팔랑치로 해서 바래봉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열려 있어 산을 좋아하는 이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팔랑마을에서 철쭉 군락지인 팔랑치까지 한 시간 걸린다고 한다. 철쭉 철엔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니 좁은 시멘트 도로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민박집이 많아 하룻밤 묵고 팔랑치에 올라 철쭉을 감상하고 내려오면 좋을 것도 같다. 고산지대라 유일의 소득원인 고사리가 많아 1㎏에 6~7만원이지만 고정 손님들이 많아 쉽게 구할 수 없을 정도란다.

철쭉 하면 바래봉이라 여기지만 철쭉을 제대로 보려면 팔랑치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팔랑마을이 유명세를 타고 있나보다. 찾아가는 길은 구례에서 인월 가는 지방도 60번을 타고 성삼재를 넘어 뱀사골 입구를 지나면 바로 왼쪽 언덕에 안내판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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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사시는 초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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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가 운영하는 민박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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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랑마을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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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볕을 받은 곶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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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잘 가꾸어진 민박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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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여가지 약초를 넣어 다리고 있다.

 

 

 팔랑마을 펜션 안내    011-658-9100,   011-659-3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