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 열두봉우리 속에 자리잡은 청량사)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한 낙동강 물이 맑은 기운으로 힘차게 흐르는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이곳은 낙동강 상류의 힘찬 물살과 뛰어난 풍광으로 여름 최적의 래프팅 장소로 환영받는 곳이다. 또 이곳에는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선 12봉의 청량산과 663년 신라 문무왕 3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청량사와 퇴계 이황이 후학들을 가르쳤다는 오산당, 원효대사가 머물렀다는 응진전, 최치원이 마시고 머리가 맑아졌다는 총명수, 신라 최고의 명필 김생이 글공부를 했다는 김생굴을 비롯 많은 유지가 남아있다.
(태백 황지에서 발원해 봉화를 지나는 낙동강 상류, 래프팅 장소로 최적이다)
청량산은 봉화읍에서 동남쪽으로 29km, 안동에서 동북쪽으로 24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봉화를 지나 탑평에서 봉성을 거쳐 명호에 이르는 918번 지방도를 따라 안동으로 이어지는 35번 국도상에 들어서자 아득한 절벽 아래로 낙동강이 힘차게 흐르고 있다. 곳곳에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들, 보트가 급물살을 만나자 즐거움과 공포가 얼굴에 어린다. 명호에서 남쪽으로 달리자 광석나루터가 있었던 청량교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야 청량산에 오를 수 있다. 이 곳에 청랑산도립공원 관리소와 박물관이 있고 강변은 여름철 캠핑장으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이곳에서 여장을 풀고 야영준비를 한다.
(청량사 올라가는 길, 불어난 물로 곳곳에 폭포를 이루었다)
밤새 내린 비로 물은 많이 불어있고 흙탕물이다. 아침에 잠깐 잦아든 비는 산행 중에 다시 내린다. 산사로 오르는 길엔 녹음이 짙고, 불어난 계곡 물은 곳곳에 폭포를 만들어 놓았다. 시멘트로 잘 포장되었지만 경사가 심해 다리가 좀 아프다. 30여분을 오르니 청량사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산사의 찻집이 있는 안심당(安心堂)이 보이고 위로 종루와 5층석탑, 유리보전과 요사채가 보인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스님 한분과 절의 잡일을 보는 처사님 한 분 뿐이다. 종이를 다져 만들어 최근에 금칠을 했다는 부처님을 모신 유리보전(琉璃寶殿)에 서서 절 구경을 한다.
(절집과 안심당, 안심당에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찻집이 있다)
(유리보전앞에서 본 금탑봉)
해발 980m 청량산 12암봉 한가운데에 연꽃처럼 자리잡은 청량사(淸凉寺). 이 절은 663년 신라 문무왕 3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본전인 유리보전(琉璃寶殿, 경북유형문화재 제47호)은 모든 중생의 병을 다스리는 약사여래불을 모신 곳으로 부처님을 종이를 다져 만든 지불(紙佛)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6.25전쟁 때 불에 타서 폐사가 된 문수전의 문수보살과 명부전의 지장보살을 옮겨 약사여래불 좌우에 모셨다. 유리보전의 현판은 청량산으로 피신을 왔던 공민왕의 친필이라 전한다.
(아래에 퇴계 이황이 후학을 가르쳤다는 오산당)
청량사를 둘러보고 원효대사가 머물렀다는 금탑봉 응진전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청량사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100여m 가면 산꾼의 집과 퇴계 이황이 후학들을 가르쳤다는 오산당이 나온다. 청량산과 가까운 도산에 살던 퇴계 이황은 청량산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스스로 호를‘청량산인’이라 짓고 벼슬 후 이 산에 머물며 후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응진전 팻말을 따라 오르면 길목에 바람을 다스린다는 어풍대(御風臺)가 있다. 바로 이곳이 청량산과 절집 감상의 최적지다. 여기서 보는 풍경은 사뭇 장쾌하다. 비에 젖은 기암절벽 사이로 휘돌아 퍼져 나가는 운무는 한 폭의 수묵화를 그리고 있다.
조선시대 지리학자 이중환이 쓴 <택리지>를 보면‘밖에서 보면 다만 흙묏부리 두어 송이 뿐이나, 강 건너 골 안에 들어가면 사면에 석벽이 둘러 있고, 모두가 만 길이나 높으며 험하고 기이한 것이 이루 형용할 수 없다’고 그 풍경을 찬탄하였다. 또 주세붕은 기행문 <청량산록>에서 '단정하면서도 엄숙하고 밝으면서도 깨끗하며 비롯 작기는 하지만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청량산이다’며 청량산을 표현했다.
(응진전에서 바라보는 남쪽 축융봉의 조망)
구절양장(九折羊腸)같은 산길을 돌아가면 신라 최고의 학자 최치원이 마시고 머리가 맑아졌다는 총명수(聰明水)가 나온다. 많은 비가 내린 탓인지 총명수는 흙탕물로 변해있다. 응진전 가는 길의 왼쪽은 바위 절벽이요 오른쪽은 천길 낭떠러지다. 조심 조심 발걸음을 옮긴다. 청량사에서 20여분을 걷자 금탑봉 절벽 아래 자리잡은 응진전(應眞殿)이 나온다. 이 응진전은 원효대사가 머물렀다는 암자다. 기영이와 나는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응진전 마루에 앉아 다리쉼을 한다. 운무에 싸인 남쪽의 축융봉을 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채마밭에 내리는 비, 뚜꺼비는 대벌래 사냥에 열중이다.
(대벌래 사냥에 성공한 뚜꺼비)
(무릇꽃, 꽃이 먼저 피고 진 다음 잎이 난다. 꽃과 잎이 만날 수 없기에 상사화라 하기도 한다)
응진전을 둘러보고 다시 돌아나와 어풍대를 지나 오른쪽으로 오르면 신라 최고의 명필 김생이 10년간 글공부했다는 김생굴이 나온다. 김생이 이곳에서 9년간 글공부로 글씨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 하산하던 날 베를 짜던 청량봉녀가 김생에게 시합을 하자고 했단다. 그러나 봉녀의 베는 고른데 김생의 글은 모자랐다. 김생은 다시 1년 동안 더 글공부를 했다는 청량봉녀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김생굴이다. 김생굴로 오르는 곳에서 보는 청량사와 오산당의 전망도 뛰어나다. 굴은 그리 깊지는 않으나 비바람을 막을 수 있게 안쪽으로 파였고 3∼4평 정도의 공간이 있다. 바로 그 옆으로 불어난 빗물로 폭포가 만들어져 내린다. 그가 쓴 불경 40여권이 청량산 연대사(蓮臺寺)의 불당 내에 보존되고 있었으나 어느 때인가 없어지고 말았다고 한다.
(김생이 글공부를 했다는 김생굴, 지금은 민간신앙인들의 기도처로 이용되고 있다)
응진전, 어풍대, 김생굴을 둘러보고 다시 청량사로 내려온다. 봄이면 붉은 산철쪽이 여름에는 운무가 가을이면 불타는 단풍 그리고 겨울 설경이 아름답다는 청량산. 산과 절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어느때고 이곳이 오르면 아름다운 풍경에 푹 빠질것만 같다. 청량사 오르는 길은 급하고 힘이 들지만 오르면 그 품값을 하는 곳이다. 긴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부침이 있게 마련이다. 오름이 있으면 내림도 있는 법, 중요한 것은 실망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이 힘든만큼 내일은 편할거라는 희망과 자신감만 있으면 족하게 세상을 살수 있으리라.
(안심당에 자리잡은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이라는 찻집)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안심당에 들러 작설차로 마음을 다스린다. 비 그친 금탑봉에 운무가 모였다 흩어진다. 다시 떠나는 길, 편안하다.(2005년 8월 2일∼3일)
찾아가는길(서울기준) |
'그룹명 > 골프,등산,스포츠' 카테고리의 다른 글
♧º▶ 우리산 길잡이 ♧º▶ (0) | 2010.06.26 |
---|---|
서울 근교 名山 3선 ① 연인산 (0) | 2010.06.26 |
도봉산 이야기 (0) | 2010.06.26 |
※ 전국산 가이드 (해당산을 클릭하면 그산에대한 모든정보가나옴) (0) | 2010.06.26 |
한라산 등반코스 및 안내 자료모음 (0) | 2010.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