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아름다운 그림,명화

사랑을 기다리는 여인 [박희숙의 명화읽기]사랑을 기다리는 여인

마니쏘리 2010. 6. 24. 21:40

사랑을 기다리는 여인

[박희숙의 명화읽기]사랑을 기다리는 여인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하는 일은 정말 평범한 일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이야기가 환상을 만들고 환상은 일상의 지루함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에 사랑이 평범해도 비범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삶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비범하게 느껴지는 사랑이 좋은 줄 알지만 우리는 누구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데 이유가 너무 많다. 그냥 사랑하면 사랑하는 대로 좋아하면 좋아하는 대로 감정의 계산 없이 마음이 흘러가게 내버려두면 좋으련만 사랑에 상처받기 싫어 이리 숨고 저리 도망가곤 한다. 스스로 사랑이 찾아온 것도 숨기지도 못하면서 사랑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필요 없는 이유를 찾느라 두리번거린다. 사랑의 상처가 두려워 마음을 이고 지고 어깨에 둘러메고 그렇게 법석을 떨어도 어차피 삶은 상처투성이다. 헤어짐이 언제 어디서든지 기습적으로 찾아와 오늘의 사랑을 위협하지만 특별히 사랑한다고 상처가 더해지는 것은 아니다. 또 지독한 사랑이 서툴게 끝이 난다 해도 그리 절망할 일은 아니다. 사랑은 계절 같은 것. 이 계절이 지나면 더 아름다운 계절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사랑을 고백하는 일처럼 쑥스럽고 무안하게 만드는 일도 없지만 고백하지 않는다면 사랑한다는 사실을 연인에게 알릴 수는 없다. 고백을 하면 최소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을 지옥으로부터 벗어나게는 해 준다.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는 마음을 솔직하게 열어 놓는 것이 사랑을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프랭크 딕시 Sir Frank Dicksee [1853-1928]
[고백] The Confession
1896년, 캔버스에 유채, 114×159,
개인 소장



사랑을 기다리는 여인

사랑한다고 고백하면 사랑이 달아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해 말 한마디 못하고 그저 끝없이 바라보고만 있다.

하지만 소금은 찍어 먹어봐야 짠맛을 알고 사랑은 말을 해야만 사랑하는 줄 느낀다.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야만 숨겨져 있는 연인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사랑의 고백으로 인해 이별이 찾아온다고 해도 후회할 필요는 없다. 이별의 본질은 슬픈 것이지만 슬픔 또한 스쳐가는 바람일 뿐이다. 바람이란 본디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바람이 지나가면 따사로운 바람이 불어온다.

프랭크 딕시(1853~1928)의 ‘고백’은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가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세상에서 힘든 고백 중에 하나가 불확실한 사랑을 밝히는 일이다. 이 작품에서 창을 등지고 앉아 있는 남자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두려움에 머리를 감싸고 있다. 햇살에 노출되어 환하게 빛나고 있지만 그녀의 얼굴은 남자에 대한 연민과 미안함 그리고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소파에 얹혀 있는 여인의 손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화면을 반 이상 찾지 하고 있는 여인이 이 작품에서 고백을 하고 있는 당사자다. 그녀의 순백색의 옷이 용서를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고백을 받고 있는 남자의 얼굴은 이 작품에서 명확하게 묘사되어 있지 않은데 그것은 남자의 복잡한 심정을 암시하고 있다.

고백을 하고 있는 여자의 홀가분한 마음은 밝은 빛으로 처리해 자신의 손에서 선택이 떠나갔음을 암시한다. 고백을 들은 남자의 절망은 어두운 빛으로 처리했다. 고백의 무게가 남자에게 옮겨 간 것이다. 또 거친 붓 터치를 남자에게 사용함으로써 고백을 듣는 남자의 암울함을 표현한 것이며 사실적으로 묘사한 여자는 마음의 혼란함이 없음을 암시한다.

프랭크 딕시는 이 작품에서 고백의 고통과 희망을 검은색과 흰색 그리고 어둠과 빛으로 대비되게 표현했다. 그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 낭만주의 화가로서 신화나 문학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제작했다.


로렌스 알마 태디마 Sir Lawrence Alma-Tadema (1836-1912)
[반가운 발자국 소리]Welcome Footsteps
1883년, 캔버스에 유채, 41×54,



사랑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여인

사랑은 구름 가득 낀 잿빛 하늘에서 무지개를 찾을 수 있고 많은 사들 가운데에서도 사랑하는 한 사람만 반짝반짝 보인다. 사랑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서로에게 드러내는 순간부터 연인들은 만남을 늘 가슴 떨리게 기다린다.

연인들은 사랑 시간이 짧게만 느껴지기 때문에 조바심을 느껴지만 특히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기 전의 시간은 기다림과 설렘, 흥분과 기쁨으로 마음이 더 조급해 진다.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더디만 가게 느껴지는 것이다.

로렌스 알마 태디마(1836~1912)의 ‘반가운 발자국 소리’는 사랑을 확인한 애인이 찾아오는 낭만적인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여인은 화려한 옷을 입고 문 앞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 문 밖에 귀 기울이고 있다. 제쳐 있는 커튼 사이로 빨간 꽃을 든 남자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다.

연인들의 마음처럼 커튼 사이로 보이는 햇살은 화사하고 나뭇잎들은 무성하다. 호피 무늬 깔개에 앉아 있는 여인은 남자의 발자국 소리를 행여 듣지 못할까 벽에 손을 댄 채 몸을 숙이고 있고 남자는 혹시 사랑을 놓칠까봐 긴장된 표정으로 꽃을 부여잡고 있다.

흐트러짐 없는 머리, 붉은색의 커다란 목걸이는 사랑을 위해 오랜 시간 공들여 화장한 흔적이 그녀의 모습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남자 사이로 언뜻 보이는 조각상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의 아들 판 신이다. 들창코에 염소의 뿔을 한 판 숲의 수호신 판 신은 숲을 누비고 다니면서 님프들을 따라다니고 음악을 연주하기도 하고 큰 고함소리를 질러 사람들을 ‘패닉’상태에 빠지게 한다.

태디마가 이 작품에서 판 신을 그려 넣은 것은 두 사람이 사랑에 빠져 있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다소 통속적인 소재이기는 하나 그는 이 작품에서 사랑을 천박하게 표현하지 않고 시적으로 미화시켜 묘사했다. 태디마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지만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영국에서 활동한 화가로서 영국적인 감수성을 가장 뛰어나게 표현한 화가다.

●박희숙 동덕여대 미술학부를 졸업하고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한 후 7회의 개인전을 연 화가다. 2004년에는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를 출간하면서 작가로도 명성을 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