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민들레 벌판' 포연(砲煙)이 자욱했던 자리가 56년 세월이 흐르면서 한 폭의 그림으로 변했다. 휴전협정(1953년) 체결 이후 일반에 처음 공개된 강원도 철원군 근북면 일대의 비무장지대(DMZ), 일명‘민들레 벌판’의 전경. 거울처럼 맑은 호수 주변의 이 평야지대는 과거 농경지와 마을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된다./환경부 제공
비무장지대에 멸종 위기 구렁이 서식
1953년 휴전협정 체결 후 56년간 닫혀있던 비무장지대(DMZ) 중부 지역 생태계의 실상이 공개됐다. 긴 세월 금단(禁斷)의 지역으로 묶인 DMZ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 남북이 군사목적으로 놓은 산불이 빚어낸 ‘인공(人工) 생태계’가 어우러진 독특한 풍광이 펼쳐져 있었다. 멸종위기에 몰린 구렁이가 DMZ 곳곳에 서식 중인 것으로 확인됐는가 하면, 국내에선 이미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토종 여우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환경부는 DMZ 생태계 민·관 합동조사단을 꾸려 지난달 15~19일까지 강원도 철원 일대 중부지역 DMZ 내부(군사분계선~남방한계선)의 생태계 현황을 조사한 결과, “광활한 자연 경관과 습지 생태계가 잘 발달해 보전가치가 매우 뛰어난 것으로 확인됐다”고 4일 발표했다. 작년 11월 서부지역(경기도 파주· 연천 일대) 조사에 이어 두 번째 이뤄진 이번 DMZ 생태계 조사에선 총 450종의 야생 동·식물이 발견돼 평야지대가 대부분인 서부지역(348종)보다 생물다양성이 상대적으로 더 풍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엔 환경부가 지정한 1급 멸종위기종인 구렁이를 비롯해 포유동물인 삵과, 어류인 묵납자루, 조류인 참매·새매 등 멸종위기에 몰린 동물 5종이 포함됐다.
이번 조사는 각 분야 생태전문가 20명이 DMZ 내부의 군(軍) 수색로를 따라 걸어 다니며 동·식물 서식실태와 경관 등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현장을 둘러본 전문가들은 “DMZ하면 빽빽한 산림이 들어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아프리카 사바나(savanna·열대 초원)를 연상케 하는 풍경이 더 많이 펼쳐져 있다”고 전했다. 남북 군사당국이 시계(視界)를 확보하기 위해 거의 해마다 불을 놓으면서, 울창한 수풀 대신 칡덩굴이나 덤불, 억새군락 등이 그 자리를 채워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진 DMZ 특유의 경관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조사단장인 서울대 김귀곤 교수는 “산불로 인해 생물 종(種)의 개체 수가 줄어드는 곳도 있어 (남북간) 산불방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 환경부 제공 DMZ조사-구렁이 허물
이번 조사에선 조사경로가 수색로에 한정돼 있었지만 국내 다른 곳에선 거의 자취를 감춘 구렁이의 허물이 여러 차례 발견되는 등 희귀 동물들의 서식 흔적이 잇따라 관찰됐다. 특히 국내에선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여우(1급 멸종위기종)가 DMZ에 살아 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국립환경과학원 최태영 박사는 “새·쥐 같은 동물의 털과 식물 열매가 뒤섞인, 잡식성인 여우의 똥으로 추정되는 배설물이 이번 조사 과정에서 드물게 발견됐다”며 “DMZ 일대 13곳에 무인 센서 카메라를 설치해 서식여부를 확인하는 추가 작업에 들어간 상태”라고 말했다.
왕성한 번식력으로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외래종들도 이미 DMZ에 대거 침투한 것으로 조사됐다. 토종 물고기를 닥치는대로 잡아먹어 ‘생태계 무법자’로 불리는 황소개구리가 DMZ 습지 곳곳에서 발견된 것을 비롯해 돼지풀·단풍잎돼지풀·미국쑥부쟁이·양미역취 같은 외래종 식물도 발견됐다. 황소개구리의 경우 작년 11월 서부지역 DMZ 조사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환경부는 “상대적으로 생태계가 잘 보전된 DMZ에서 이들 외래종들이 더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 국화과(科)의 쑥방망이(사진 왼쪽)와 미나리아재빗과의 금꿩의다리(가운데) 등 희귀 토종 식물들도 DMZ 곳곳에서 여럿 발견됐다. 오른쪽 사진은 국내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구렁이(1급 멸종위기종)가 허물을 벗은 모습./환경부 제공
'가깝고도 먼 북한..긴장감 확연한 DMZ'
뉴욕타임스(NYT)가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도 평상시나 다름없는 서울과 달리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는 비무장지대의 모습을 통해 한반도의 현실을 소개했다.
NYT는 4일 북한이 전쟁 위협을 지속하고 추가로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부유해진 한국인들은 대체로 북한의 호전적 태도에 무관심한 듯 보이고 북한의 핵실험 이후에도 서울의 삶은 달라진 것이 없다면서 그러나 비무장지대 근처에서의 긴장감은 확연히 지속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비무장지대를 관광객들이 둘러볼 수 있는 한 전망대의 경우 최근까지 한달에 3천명 가량의 관광객이 찾았으나 지난 주 북한의 핵실험 이후 군이 관광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광 취소가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단체관광객을 비무장지대에 유치하는 한 여행사의 대표는 지난 주에 100명 이상이 관광을 취소했다고 신문에 말했다.
북한이 핵실험 이후 이곳 비무장지대 전망대를 찾은 단체관광객은 인천공항 면세점 직원들이 유일하다. 면세점측은 직원들의 정신교육 차원에서 비무장지대 관광을 마련했고, 일부 직원들이 걱정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결국 아무도 관광을 포기하지는 않았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한 직원은 한국이 엄청나게 변했지만 북한은 변하지 않고 있다면서 핵 문제만 아니면 부와 기술 면에서 한국인이 누리고 있는 우월성을 설명한 뒤 “모든 가정이 자녀들을 이곳에 데려와 현재 우리의 번영이 철조망에 의해 보호되고 있음을 보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신문은 이들이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리본을 철조망에 매다는 것으로 관광을 시작했다면서 북한의 도발과 무기 실험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 아무도 북한에 적대감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구선희씨는 “이번 관광이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며 북한이 가장 가깝기도 하지만 가장 먼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