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 화엄늪을 다녀와서
서두 |
낙동정맥은 낙동강 동쪽에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태백의 구봉산에서 부산 다대포까지 내려온 천리 산줄기이다. 예전에 태백산맥이라 불리던 산줄기의 남반부가 바로 낙동정맥이다.
위쪽부터 백병산(1259)-백령산(1004)-통고산(1066)-백암산(1003)-주왕산(907)-보현산(1124)-단석산(829)-가지산(1240)-취서산(1059)-금정산(802)-구덕산(565)으로 내려와 다대포 몰운대에서 바다로 침잠한다. 이 낙동정맥은 낙동강과 함께 경상도의 생태축을 이루고 있다.
천성산 전설 |
이번 걸음은 낙동정맥의 한 식솔인 경남 양산 천성산을 찾아간다. 천성산은 통도사가 있는 취서산(영축산) 줄기가 남동쪽으로 뻗은 산이다. 취서산을 통도사 창건주인 자장율사의 산이라고 하면, 천성산은 원효대사의 산이다.
천성산 역사는 1천 3백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루는 원효가 산에 올라가 천안통으로 보니 당나라 산동성 법운사에 큰 재난이 닥쳐오고 있었다. 원효는 그 절의 대중들을 구하기 위해 문짝을 뜯어 그곳으로 던져 날렸다. 절 마당에 큰 널판이 떨어지자 대중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법당을 뛰쳐나왔다.
그 순간 뒷산이 무너져 법당을 덮쳤고, 대중들은 화를 모면했다. 이 사실을 안 1천명의 대중들이 해동신라로 건너와 원효의 제자가 되었다. 천성산(千聖山)이라는 이름도 '해동원효 척판구중(海東元曉 擲板救衆)'이라는 이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쨌거나 시퍼런 계율로 살다간 자장율사와 파계까지하며 자유분방하게 살다간 원효대사가 취서산과 천성산으로 서로 이웃해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천성산 들머리 |
천성산은 계곡이 잘 발달되어 있다. 천성산의 여러 등산로도 계곡을 따라 나있다. 그 중 내원사 입구 계곡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내원사 입구 삼거리에서 내원사까지는 버스정류장 삼거리에서 4킬로미터 남짓하다. 걸어가기엔 조금 먼 듯 하지만, 차를 타고 가기보다는 주위의 풍광을 감상하며 쉬엄쉬엄 걸어가는 것도 멋 있다.
용연천 내원사 계곡 - 수서곤충 |
내원사 계곡물은 용연천이라는 이름으로 양산천과 합류되어 낙동강 본류로 들어간다. 계곡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물이끼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수질이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또, 물을 보면 그 숲을 안다고 했으니, 천성산의 숲 생태계가 아직은 크게 훼손되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내원사 계곡을 이루는 용연천은 생태탐사하기에 좋다. 식물, 수서곤충, 물고기, 곤충, 조류, 파충류... 개체수는 많지 않으나, 서식종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하루살이 유충도 용연천의 수서곤충 식솔이다. 하루살이는 이름과는 달리 '하루 목숨'이 아니다. 유충시절 대부분을 물속에서 보내지만, 물 밖에 나와서만도 며칠을 산다.
하루살이는 물속의 낙엽 부스러기나 유조류를 먹기 때문에 물속의 청소부라 할만하다. 그리고, 물고기들에겐 썩 좋은 먹이가 되고 있다. 하루살이는 삼각형에 가까운 날개에 2-3개의 꼬리를 갖고 있다. 배에 달린 아가미로 호흡을 한다.
밀잠자리 |
용연천 주변은 잠자리류들이 많다. 밀잠자리가 특히 눈에 많이 띈다. 수컷은 하늘색을 띠지만, 암컷은 황갈색을 띤다. 게다가 가을이 되면서 배의 앞쪽으로 흰색 가루가 덮이고 뒤쪽은 흑색을 띠게 되어 자칫 다른 잠자리로 헷갈리게 한다.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여름잠자리이지만, 환경이 나빠지면 그곳을 뜨고마는 지표종으로 알려져 있다.
장수풍뎅이 |
물장구치던 아이들이 뭔가를 잡아놓고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놀랍게도 장수풍뎅이다. 장수풍뎅이는 사슴벌레, 장수하늘소 등과 함께 대형 딱정벌레류에 속한다.
장수풍뎅이는 덩지가 큰 데다가 주위 환경이 파괴되면서 점차 사라져가는, 환경부 지정 특정야생동물의 하나이다. 그런데, 부산과 양산 공단을 지척에 둔 천성산에 아직까지 장수풍뎅이가 살고 있다는 것은 크나큰 기쁨이다.
장수풍뎅이는 어릴 때 썩은 낙엽이나 퇴비 속에서 살다가 성충이 되면 늙은 활엽수의 나무진을 먹고 산다. 주로 여름철 깊은 활엽수림에 나타나는 장수풍뎅이는 암수의 모양이 다른데, 수컷은 코뿔소처럼 머리에 돌기가 나 있어서 매우 심미적인 곤충이다. 밤중에 더러 불빛을 보고 날아드는데, 마치 헬리콥트가 지나가는 것처럼 날개짓이 힘차다.
내원사 계곡 - 피서문화 |
병풍골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아기자기한 기암절벽이 계곡을 따라 이어져 있다. 계곡 그득하게 피서객들이 돗자리를 깔고 있다. 모두가 더위에 쫓겨온 도시인들이다. 예전 사람들은 피서라고 해서 굳이 멀리 가지 않았다.
마을의 개천이나 숲그늘이 피서지였다. 그러나, 개발바람에 도시에 숲과 개천이 망가지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도시를 탈출하게 되었다. 큰 나무 한 그루가 에어컨 10대 몫을 한다는 보고도 있으니, 도시에 숲을 조성하면 피서 문화가 좀 바뀌어질지...
계곡 물소리 |
물소리만큼 천변만화하는 것도 없다. 물소리는 지나는 곳마다 다르게 들린다. 개울의 폭이 다르고, 지형지물이 다르고, 숲이 다르고, 수량과 수질이 달라지면 물소리도 자연 달라질 수 밖에 없다.
특히 듣는 이의 감정에 따라 물소리는 천변만화로 달라진다. <혼불>을 남기고 떠난 소설가 최명희는 어느 계곡에서 물이 '소설, 소설, 소설...'하고 흐르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소,설,소,설,소,설... 물 밑바닥 잔모래가 구르는 소리다. 자연과 마음이 합일이 되면 그런 소리가 들릴 것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물소리가 청아하다. 계곡의 소폭포들이 뱉아내는 물소리만으로도 등줄기가 시원하다. 소폭포와 여울들은 물속에 신선한 산소를 공급해주는 에어펌프와도 같다. 용연천 1급수도 그들이 만들어낸다.
매미소리 |
계곡 숲속에서 매미가 운다. 매미는 수컷만 운다. 수컷은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 자기의 존재를 암컷에게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여름내내 기를 쓰고 우는 것이다. 물소리가 요란할수록 수컷은 더욱 목청 돋워 우는 것이다.
대벌레 |
내원사로 건너가는 개울숲에 여러 마리의 대벌레가 눈에 띈다. 대벌레도 여름과 가을에 나타나는 곤충이다. 몸의 길이는 10센티 가량. 몸과 다리가 가늘고 길어서 얼핏보면 사마귀나 게아재비를 연상케 하지만, 생태는 전혀 다르다.
사마귀는 날개가 있는 육식곤충인데 비해 대벌레는 날개가 없는 초식곤충이다. 게다가 동작도 날래지 못해서 적들에게 곧잘 잡아먹힌다. 그래서, 자기를 지키는 수단으로 카멜레온처럼 몸색깔을 놀랍게도 잘 바꾼다. 나뭇잎에 붙어 있을 때는 녹색으로, 땅바닥에 있을 때는 흙색으로 자신을 위장한다.
또, 생김새가 나뭇가지를 닮은 것도 자기방어적 진화의 결과일 것이다. 적이 나타나면 몸과 다리를 쭉 뻗고 나뭇가지인 양 꼼짝을 하지 않는다.
내원사 계곡숲엔 반딧불이의 천지이다. 여름이면 현란환 야광의 축제가 밤마다 열린다. 반딧불이는 환경지표종이다. 반딧불이는 적어도 2급수 이상의 양호한 수질에서만 서식할 수 있다.
내원사 |
여의교를 건너면 내원사이다. 원효의 위력을 따라 멀리 중국에서 많은 대중들이 찾아왔다고 해서 창건 당시에는 올 '래(來)'와 멀 '원(遠)' 자를 써서 '來遠寺'라 하였으나, 지금은 '內院寺'로 쓰고 있단다.
원효가 머물다간 후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의천이 천태사찰로 바꾸어놓았고, 민족항일기에는 혜월선사가 주석하며 많은 선승들을 배출하였다.
큰법당에 걸린 '선나원(禪那院)' 편액과 선방에 걸린 '선해일륜(禪海一輪)'이라는 현판은 내원사가 선찰임을 말해주고 있다. 지금도 내원사에는 비구니 스님 60여분이 참선으로 정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공비들의 방화로 완전히 소실되는 바람에 이렇다할 문화유산은 없다.
대나무 숲 |
내원사에서 천성산으로 가자면 대나무숲을 지나야 한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제법 그윽하다. 대나무는 곧으면서도 폭풍우에도 잘 꺾이지 않는 유(柔)함이 있다. 대나무의 강직(剛直)과 우유(優柔)는 마디에서 나온다. 마디 없는 대나무는 대나무가 아니다.
대나무는 그 마디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성장까지도 멈추며 고통의 시간을 참고 견뎌낸 것이다. 대나무 가지와 잎도 그 마디에서 나오고, 땅속 뿌리까지도 그 마디에서 나온다. 실제가 그렇다.
群居不倚(군거불의) 무리 중에 있어도 남에게 기대지 않고 獨立不懼(독립불구) 홀로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소동파가 노래한 대나무이다. 그래서 대나무는 선찰(禪刹)에 더욱 잘 어울리는 나무이다.
천성산 숲 |
대숲을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숲길은 그윽하고 깊다. 소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서어나무, 보리수나무, 털진달래, 산초나무, 개옻나무, 조록싸리 등등이 한데 어울려 있다.
그러나, 덩지 좋은 노거수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한국전쟁 때 전화(戰火)를 입은 까닭일까, 수령들이 많아야 50년 정도이다. 게다가 거의가 잡목이라 재목감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염려할 일은 아니다. 뛰어난 목수는 쓸모를 생각해서 나무를 고르지 않고, 나무를 보고 그 쓸모를 생각한다고 했다. 우리 인간사회도 그랬으면 오죽 좋으랴.
칡 이야기 |
여름이면 전국 어딜 가나 칡꽃이 만발이다. 그러나, 천성산엔 칡이 그리 많지 않다. 사연인즉-. 원효의 제자가 마을로 탁발을 갔다가 절로 돌아오는 길에 칡넝쿨에 걸려 그만 넘어져 쌀을 쏟고 말았다. 그 이야길 듣고 원효가 도술을 부려 천성산의 칡을 모두 거두어버렸다고 한다. 그렇고보니 천성산의 칡이 다른 산에 비해 빈약하게 보인다.
임도 |
정상으로 오르는 숲속 등산로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소로이다. 그런데, 내원사를 떠나 20여분 올라가면 양산시가 낸 임도(林道)가 느닷없이 나타난다. 그런데, 노폭을 보면 산불방지나 임야 관리에 목적을 둔 임도가 도무지 아니다.
임도규정에 나와 있는 3미터에 무려 2배가 넘는다. 임도 주변을 군데군데 정원석으로 꾸미고, 도로포장에다 주차장까지 만든 것을 보면 양산시가 천성산을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낸 임도가 분명하다.
특히 임도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소유주인 내원사의 동의도 없이 사찰림을 엄청나게 훼손했다. 더욱 한심한 일은, 사찰측의 항의를 받고 양산시가 훼손지 복원용으로 심은 나무가 바닷가에서 자라는 해송이라는 점이다. 공무원들의 생태맹(生態盲)이 가소롭고도 가당찮은 지경에 이르렀다.
얼핏 생각하면 자연파괴는 인간이 먹고 살기 위한 부득이한 행위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아니다. 무지에서 오는 욕심과 자연에 대한 오만, 그리고 향락본성 때문이다.
재미있는 일 |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양산시의 무단 임도개설을 두고 내원사 스님들은 악을 쓰고 반대하는 데 비해, 본사인 통도사 일부스님들은 한때 "산에 길을 내주면 좋지 뭘 그래 ? 암 말 말고 가만 있어"라고 두둔했다는 점이다. 하긴 통도사 스님들만 아니다. 불교계의 상당수 스님들은 아직도 환경문제에 둔감하다.
본사인 통도사는 비구가 살고, 말사인 내원사는 비구니가 산다. 통도사 비구들은 전통적으로 정치적이며 현실적이라는 절집안 이야기가 더욱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러나, 지금은 통도사의 대중스님 대다수가 생각을 바꾸었다.
화엄벌 개요 |
문제의 임도를 지나 천성산 정상까지는 1시간 거리이다. 8부 능선께 오르면 갑자기 드넓은 억새풀과 진풀이새 초지가 나타난다. 위쪽으로는 천성산과 원효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평평한 능선이 이어져 있다. 이곳이 바로 원효가 1천명의 대중을 모아놓고 금북[金鼓]를 치며 화엄경을 설했다는 전설의 화엄벌이다.
9만여 평의 넓은 초지의 절반 가량은 국내에서 몇 군데 밖에 없는 희귀한 산지습지가 자리하고 있다. 화엄늪이라고 부르는 이 습지는 1999년 9월 울산의 식물학자 정우규 박사에 의해 처음 보고되었다.
늪의 수원(水源)은 지하에서 흘러나오는 용천수이다. 위쪽에 따로 계곡이나 숲이 있는 것도 아닌데 초원 곳곳에서 용천수가 흘러 초원을 흥건히 적시고 있다. 바닥은 낙엽과 풀잎들이 쌓여 이탄층(泥炭層)을 이루고 있다. 물먹은 스펀지같은 이탄층 사이에서 물이 흘러나와 더러는 샘을 이루기도 하고, 더러는 도랑을 만들며 아래로 흐르고 있다.
화엄늪 서식종 |
이와같은 고층 산지습지는 주위 환경에 맞는 특이한 생물종들이 특수한 생태계를 이루며 수천 수만년을 살아왔다. 그대로가 살아있는 작은 자연사박물관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자생식물은 695종이며, 곤충은 38종이나 된다고 한다.
화엄벌의 아름다운 생명들을 보면, 그들은 천성산이 좋아서 꽃나무와 풀벌레로라도 다시 돌아와 살려고 했던 원효시대의 대중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고 그들을 보면,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잠자리 한 마리에도 원효의 얼 서려 있는 듯하다.
늪의 식생을 보면, 억새와 진풀이새 군락 사이에 끈끈이주걱, 이삭귀개, 잠자리난초, 미꾸리낚시, 동의나물, 물매화, 수정난풀, 물봉선, 고마리, 송이풀, 물이게, 물이끼, 비비추, 은난초, 다래, 꽃창포 등 습지성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식충식물이다. 일반적인 자연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는 곤충이 식물을 먹이로 하지만, 특수한 종의 경우는 식물이 곤충을 먹이로 한다. 그것이 바로 식충식물이다. 우리나라에는 끈끈이귀개과와 통발과에 속하는 12종의 식충식물이 있다. 식충식물은 개체수가 적어서 특정야생 동식물로 지정되어 있다.
끈끈이주걱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식충식물로, 이탄층이 두터운 곳에 서식하는 양지성 습지식물이다. 흔히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는데, 이름 그대로 잎 모양이 주걱 모양으로 생겼다. 잎이 분화되어 만들어진 선모(샘털)에서 끈끈액이 분비된다. 이 끈끈액을 곤충들이 이슬방울로 착각하여 내려앉는 순간 찰싹 달라붙고 만다.
끈끈이주걱이 곤충을 완전히 감싸는 데는 5시간 안팎이 걸린다. 그리고 잠자리 한 마리를 완전히 소화하기까지는 1주일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끈끈이주걱은 자기 손에 잡힌 것이 생물체인지 낙엽 부스러기인지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장마철에는 식충활동이 떨어지고, 대신 꽃대가 길게 나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단풍철이면 잎은 시들고 비늘같은 겨울눈만 남아 겨울을 난다.
끈끈이주걱은 뿌리가 얕아서 사람들이 조금만 밟아도 살아나지 못한다. 그나마 토양과 수질 오염에 너무 약해서 전국적으로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다래 |
그리고, 여름이면 다래꽃도 화엄벌을 하얗게 덮는다. 다래는 낙엽지는 활엽덩굴식물이다. 줄기의 골속은 갈색이며, 어린 가지에 잔털이 있다. 잎은 어긋나게 달리고, 매화처럼 생긴 꽃은 암수 딴 나무로 여름에 하얗게 핀다. 가을이면 길이 2센티 내외의 길쭉한 타원형 열매가 익는다.
<동의보감>에는 '열을 내리게 하고, 요결석을 치료하며, 대장을 튼튼하게 한다'로 나와있다. 그 옛날 원효와 1천의 제자들도 이 다래로 속앓이를 다스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자라 |
수서곤충으로는 물자라를 비롯해 각종 잠자리 유충들이 관찰된다. 평지도 아닌 산꼭대기에서 물자라를 만난다는 것은 예사로운 기쁨이 아니다.
물자라는 한 차례 짝짓기를 해서 1개의 알을 얻는다. 통상 1백여개의 알을 얻기 위해 암컷은 1백여 차례나 짝짓기를 해야하는 괴로움이 있다. 짝짓기를 끝낸 암컷은 수컷의 등짝에다 알을 낳아놓고는 죽는다.
홀로 남은 수컷은 알이 새끼로 부화할 때까지 등에 짊어지고 살아간다. 행여 알이 등짝에서 떨어질까 조바심이 되어 알이 부화할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를 않는다.
생명은 추잡한 쾌락 끝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성스러운 희생 끝에 탄생하는 것이다.
이곳엔 제일줄나비를 비롯하여 산지성 일반곤충들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잠자리로는 꼬마잠자리가 흔치 않게 보인다. 특정 야생동물로 지정된 표범장지뱀과 도룡뇽이 관찰되고, 여러 종류의 올챙이들도 보인다.
그리고, 초식동물인 고라니와 멧토끼를 비롯하여 육식동물인 너구리와 오소리도 천성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나 다를까. 너구리가 억새밭 사이에다 배설물을 싸놓고 갔다.
원효와 너구리 |
문득 원효와 너구리 이야기가 떠오른다. 아직 원효가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던 젊은 시절의 일이었다. 원효의 스승으로 알려진 대안스님이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어미 잃은 너구리 새끼를 만났다. 대안스님은 매일같이 우물가로 가서 아낙네들에게 젖을 시주 받아서 너구리 새끼를 키웠다.
보름이 지난 후, 길을 떠나면서 스님이 하던 일을 제자인 원효에게 맡겼다. 돌아와보니 너구리새끼가 죽어 있었다. 지혜가 어둡고 정성을 다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까마귀 울음소리가 났다. 대안스님이 죽은 너구리 새끼를 까마귀에게 주었다. 까마귀에게는 배를 부르게 하고, 너구리 새끼에게는 보시의 공덕을 쌓게 하기 위함이었다. 생사가 불이(不二)라고 했다. 죽은 것의 방생이다.
이탄층 |
숲 하나 없는 산꼭대기에 이토록 다양하고 튼실한 생태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용천수와 이탄층 때문이다. 특히 습지생태계에 있어서 이탄층은 생물들의 산란처와 서식지가 되는 생명의 아지트와 같다.
이탄층이 파괴되면 물을 저장하고 내보내는 기능이 없어져 토양이 매말라버린다. 토양이 각박해지면 식물 생태계가 타격을 받고, 식물생태계는 곤충생태계를 뿌리째 흔들어 놓으며, 곤충생태계의 파괴는 어류·조류·포유동물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된다. 물을 저장하고 걸러서 내보내는 이탄층이 파괴되면 아래쪽 용연천 수질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나라에는 이와 같은 산지습지가 그리 많지 않다. 강원도 용늪과 무제치늪 등 대여섯 군데 밖에 없다. 그만큼 소중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
그런데, 최근 양산시가 이곳에서 갖가지 이벤트 행사를 벌여 생태계를 크게 망가뜨려 환경단체로부터 눈총을 받고 있다. 특히 지난 봄 철쭉제 때는 1천여 명이 몰려들어 화엄벌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늪 가운데를 파고 샘터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이탄층은 일단 밟히면 그 순간부터 망가진다. 스펀지와는 달리 이탄층은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1센티 두께의 이탄층이 쌓이려면 1백년이 걸린다고 하니, 등산화에 의해 짓밟힌 이탄층이 제 모습을 갖기까지는 앞으로 2-3백년은 족히 걸린다.
환경윤리 |
환경단체에서 삿대질을 해대자 양산시는 뒤늦게서야 주변에 말뚝을 박고 줄을 둘러쳤다. 그리고, 손바닥만한 표지판을 줄어 걸어둔 게 전부다. 하긴 지난 1998년 환경부가 지정한 정족산의 무제치늪도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상황에서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싶다.
망가진 늪 앞에 서서 자연에 대한 환경윤리를 생각한다. 그동안 윤리나 도덕은 인간 중심이었다. 오직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규범으로서만 그것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환경문제가 지구 최대의 현안이 된 지금 우리는 이제 자연에 대한 환경윤리에 마음을 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규범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뢰 |
화엄벌의 초지는 군 부대가 자리하고 있는 정상까지 뒤덮고 있다.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정상 부근은 온통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다. 그것도 부족해서 군데군데 '지뢰' 표지가 걸려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천성산 주변은 3천4백여 개의 지뢰가 묻혀 있다고 한다.
이곳 뿐 아니다. 우리나라의 주요 군사시설 주변은 온통 지뢰밭이다. 서울 도심의 야산에도 지뢰가 엄청나게 묻혀 있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인명 피해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야생동물의 피해는 일일이 보고할 수 없을 만큼 자주 일어난다. 그리고, 지뢰가 묻힌 지역은 산불이 나도 진화작업에 장애물이 되기 때문에 산불 피해가 클 수 밖에 없다.
다행히 내년이면 군부대가 다른 데로 이동하고 매설지뢰도 모두 걷어진다고 한다. 군부대가 없어지면 차량이 오르내리는 작전도로도 함께 폐쇄될 것이다. 하지만, 천성산을 지키는 데는 오히려 지금의 상태가 더 낫다는 주장도 있다. 군부대가 철수하고 지뢰와 철조망이 걷어지면 당국의 천성산 관광개발이 본격화되기 때문이다.
식물 - 으아리 |
초지가 덮힌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그윽한 수림이 펼쳐진다. 능선에서 내려다보는 숲은 마치 푸른 양떼구름처럼 풍성하다. 능선과 등산로 주변에는 으아리, 까치수염, 꿩의다리, 갈퀴덩굴, 참취, 억새, 실새풀, 쑥부쟁이, 족도리풀, 노루오줌, 신비랑이, 하늘나리, 엉겅퀴, 솔붓꽃, 꿀풀, 족도리풀 등등의 풀꽃들과 싸리, 찔레, 산수국, 청미래덩굴, 누리장나무, 사스레피나무 등등의 풀꽃과 관목들이 자리하고 있다.
으아리는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지 쉽게 볼 수 있는 낙엽지는 덩굴나무이다.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산 기슭이나 숲가장자리에서 눈부신 흰 꽃을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운다. 사위질빵과 다른 점은 잎 가장 자리에 톱니가 없다는 점이다. 신경통에 좋다는 한방약 '위령선'은 으아리의 뿌리를 가공해서 만든 것이다.
곤충 |
천성산엔 위기종인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와 풍이 같은 딱정벌레류를 비롯하여 세줄나비, 노랑나비, 대만흰나비, 쌍살벌, 파리매, 섬서구, 사마귀 등등 .... 곤충상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조류-매. 까마귀 |
머리 위로 매 몇 마리가 맴을 돈다. 참매는 예로부터 꿩사냥에 사용해 온 대표적인 사냥매이다. 그러나 오늘날엔 그의 생존집단이 점차 줄어들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으리만치 보호에 필요성을 수반하게 된 비교적 희귀한 새가 되고 말았다. 그 매가 천성산에 서식하고 있다는 것은 이만저만 반가운 일이 아니다.
산꼭대기 나무 위에 몇 마리 까마귀가 앉았다가 가볍게 창공을 날아오른다. 신라인들은 상서로운 새라고 해서 대보름날 약밥을 지어 까마귀에게 보은했다. 신라문화가 일본으로 전해져서 일본도 까마귀를 상서로운 새로 여기게 되었고, 심지어는 애완용으로 키우기까지 한다.
울음소리야 다를 바 없지만, 일본인들은 까마귀 울음소리를 '가와이 가와이...'로 표현한다. '가와이'라는 말은 '예쁘고 귀엽다'는 뜻이다. 너무 귀여워하다보니 도쿄시내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희랍전설에서는 원래 은빛 나는 왕녀였는데, 너무 오만을 부리다가 신의 버림을 받아서 검은 까마귀가 되었다고 전한다. 희랍사람들은 까마귀 우는 소리를 어떻게 내는지 궁금해진다.
등산 |
천성산은 가지산, 취서산과 함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평일에도 등산객들이 즐겨찾는다. 산은 뭇생명들의 집덩어리이다. 산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고 그곳에 사는 야생동식물들이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일수록 자연에 대한 겸허한 하심이 필요하다. 조상들은 산을 '오른다[登山]'하지 않고, '든다[入山]'라고 하였다. 꼭히 등산이라는 말을 써야 할 때는 '등고(登高)라는 말을 썼다. 등고란, 산을 오르는 게 아니라 그 산의 높이를 오르는 것이다. 그걸 생각하고 산에 오르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임도 -기계의 길 |
능선을 타고 동북쪽으로 계속 가면 능구렁이처럼 산을 휘어감고 있는 불법임도를 다시 만난다. 포장만 하면 4차선 도로가 될 정도로 넓직하다. 산불진화는 임도의 기능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고성산불에서 보듯이 임도의 진화나 방화기능은 제로에 가깝다. 오히려 바람을 유도하는 바람길 역할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서 임도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나저나 관광개발 목적으로 낸 이 임도는 머지 않아 자동차나 내달리는 기계의 길이 될 것이다. 기계의 길은 살아있는 것들의 길이 아니다. 기계는 오직 자기만이 그 길을 다니는 것을 고집한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차를 비켜주어야 하고, 동물들은 차를 피해 밤에나 몰래 다니게 되었다. 이건 도무지 길이 아니다.
훼손-해원 |
아직도 할 일이 남았는지, 어디선가 포크레인 굉음이 끊임없이 들린다. 말 없이 그저 죽은 듯이 서 있지만, 꽃과 나무들도 우리들과 같은 감정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무를 잘라내는 기계톱 소리와 산을 잘라내는 포크레인의 굉음에 천성산의 꽃과 나무들은 온통 가슴 조이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것이다.
숲을 망가뜨리고 낸 임도 주변의 상처가 볼 때 마다 눈에 아프다. 마구잡이로 잘라낸 산의 절개지의 흙들이 비가 쏟아질 때마다 떠내려 갔다. 곳곳에 흙을 잃고 쓰러진 나무들이 보인다. 산이 잘려나가는 바람에 애꿎게 죽거나 터를 잃은 생명들이 얼마나될까...
다른 나라가 흉내내지 못하는 우리만의 독창적인 문화가 바로 해원(解寃) 문화이다.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은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떠다니는 무주고혼(無主孤魂) 중음잡신(中陰雜神)이 된다. 중음잡신들은 자신의 남은 한 때문에 미련을 갖고 자꾸만 이승에 되돌아보고 집착하게 된다. 잡신들의 그 미련과 집착은 이승의 살아있는 이들에게 해코지로 나타난다. 그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것이 각종 굿을 비롯하여 푸닥거리, 살풀이 등등의 해원문화이다.
다른 모든 생명들도 그럴 것이다.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삶터를 빼앗기고 억울하게 죽은 생명체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억울한 죽임을 당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중음으로 떠도는 억울한 영혼들은 이 땅에 자연재해와 공해와 새로운 질병으로 해코지를 하게 될 것이다. 서러운 그들을 우리는 어떻게 달래주어야 하나 ...
밀밭늪 |
무거운 발걸음으로 임도를 따라가면 밀밭늪과 무제치늪을 만날 수 있다. 밀밭늪은 해발 7백고지 위아래에 걸쳐 있다.
화엄늪보다 고도는 비슷하지만, 면적은 절반 정도로 작은 규모이다. 하지만, 서식하고 있는 식물로는 끈끈이주걱, 이삭귀개, 물매화, 동의나물, 잠자리란, 꽃창포, 흰제비란, 도롱뇽, 물자라, 표범장지뱀, 꼬마잠자리, 굴뚝나비 등등 화엄늪에 결코 모자라지 않는다.
정족산 무제치늪
천성산 제2봉은 남으로 제1봉(옛 원효산)을 두고 북으로는 정족산을 두고 있다. 세 산이 능선으로 서로 이어져 있다. 천성산은 양산시에 속해 있으나, 북쪽에 있는 정족산은 울산땅이다. 정족산 능선에 서면 동쪽으로 동해바다가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인다.
정족산은 해발 7백미터에 불과하지만, 호랑이꼬리로 알려진 장기곶보다 먼저 해가 뜬다. 그래서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해돋이 광경을 보기위해 올라온다. 정족산은 무제치늪으로도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정족산의 정산 부근에 있는 무제치늪은 고층습지로서는 강원도 양구의 대암산 용늪에 이어 1988년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보호지구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지정 당시에만 씨끌벙하게 떠들었지, 그 후로는 모니터링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내버려져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임도와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얽혀져 있어서 보존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꽃창포 |
무제치 늪으로 내려가는 길섶에 꽃창포가 화려한 자태를 뽐네며 피어있다. 붓꽃과에 속하는 꽃창포에는 두 종류가 있다. 자주색 꽃창포는 우리 고유종이지만, 노랑꽃창포는 남의 나라 것이다.
우리 꽃창포는 우리나라 전국의 산과 들의 습지에 자생하며, 뿌리줄기로도 번식되지만 씨앗으로도 잘 번식된다. 근래들어 원예농가에서도 재배하는 여러해살이 풀꽃이다.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볼 수 있다.
정족산 솔숲 |
8부 능성 위로는 소나무가 많이 보인다. 이 일대의 소나무는 특이한 형질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소나무들이 지상에서 1미터 위치에서 줄기로부터 3-4개의 굵은 가지가 꼬이듯이 갈라져나간다. 게다가 키들도 모두 작아서 써까래감도 안 되는 낙제목들이다.
이 일대 소나무들의 외형이 불구의 모습을 띠는 것은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의 혹독한 산불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나무들의 수령이 거의 50-60년인 것을 보면 매우 신빙성이 가는 이야기이다.
흔히 사람을 나무에 빗대어 인재(人材)라고 하지만, 나무도 사람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어릴 때 나쁜 환경에서 자라면 성장한 뒤에까지도 그 영향을 미친다. 줄기가 이상하게 변형되었거나, 심하게 비틀렸거나, 상처가 깊거나 한 나무들은 어릴 때 나쁜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
그나저나, 최근 천성산은 또다른 근심에 휩싸였다. 정부의 고속철도가 천성산 심장을 뚫고 지나가게 되었다는 점이다. 고속전철의 천성산 관통은 수맥변화와 지반침하를 일으켜 화엄늪지대를 파괴하며, 천성산 숲과 계곡을 급속하게 망가뜨릴 것이 뻔하다.
1994년 환경영향 평가 당시 화엄늪지대는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천성산 부분만이라도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실시해야 할 것이다. 일을 함부로 저질러놓고 나중에 감당하지 못하는 정부의 졸속정책이 천성산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래저래 산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가뿐하지만은 않다.
교통 |
부산 동부터미널에서 15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언양행 완행버스를 타고 내원사 입구 삼거리에서 내린다. 승용차는 경부고속도로 통도사 IC에서 내리면 내원사 입구까지 5분 거리이다.
문의 : 055-374-6466 (내원사 종무소)발췌 : 두레생태기행 ▒ 원본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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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가 있는 영취산을 자장율사의 산이라고 하면, 천성산은 원효대사의 산이다. 1천 3백여 년 전, 원효가 중국의 제자 1천명을 모아놓고 설법했다는 그 유명한 화엄벌도 이 산에 있기 때문이다.
내원사 계곡물은 용연천이라는 이름으로 양산천과 합류되어 낙동강 본류로 들어간다. 계곡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물이끼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수질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물을 보면 그 숲을 안다고 했으니, 천성산의 숲 생태계가 아직은 크게 훼손되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용연천 주변은 잠자리류들이 많다. 초여름이면 밀잠자리가 특히 눈에 많이 띈다. 수컷은 하늘색을 띠지만, 암컷은 황갈색을 띤다. 게다가 가을이 되면서 배의 앞쪽으로 흰색 가루가 덮이고 뒤쪽은 흑색을 띠게 되어 자칫 다른 잠자리로 헷갈리게 한다.
병풍골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아기자기한 기암절벽이 내원사 계곡을 따라 이어져 있다. 물소리만큼 천변만화하는 것도 없다. 물소리는 지나는 곳마다 다르게 들린다. 개울의 폭이 다르고, 지형지물이 다르고, 숲이 다르고, 수량과 수질이 달라지면 물소리도 자연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듣는 이의 감정에 따라 물소리는 천변만화로 달라진다.
월 중순이면 매미가 울기 시작한다. 매미는 수컷만 운다. 수컷은 무성한 나뭇잎에 가려 자기의 존재를 암컷에게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여름내내 기를 쓰고 우는 것이다. 물소리가 요란할수록 수컷은 더욱 목청 돋워 운다.
또, 밤이면 이따금 딱정벌레들이 불빛을 찾아 날아든다. 애사슴벌레에서부터 장수풍뎅이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딱정벌레들이 보인다. 애사슴벌레는 집게를 뿔처럼 달고 있는 작은 딱정벌레다. 주로 여름철 깊은 활엽수림에 나타나는 장수풍뎅이는 암수의 모양이 다른데, 수컷은 코뿔소처럼 머리에 돌기가 나 있어서 매우 재미있게 생겼다.
여의교를 건너면 내원사다. 원효가 머물다간 후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의천이 천태사찰로 바꿔놓았고, 민족항일기에는 혜월선사가 주석하며 많은 선승들을 배출했다. 지금은 꽃보다 아름다운 비구니 스님들이 정진하고 있다.
대숲을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숲길은 그윽하고 깊다. 종류는 다양하나, 덩치 좋은 노거수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염려할 일은 아니다. 뛰어난 목수는 쓸모를 생각해서 나무를 고르지 않고, 나무를 보고 쓸모를 생각한다고 했으니….
천성산 8부 능선께 오르면 갑자기 드넓은 초원이 나타난다. 위쪽으로는 천성산과 원효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평평한 능선이 이어져 있다. 이곳이 바로 원효가 1천명의 대중을 모아놓고 금북(金鼓)을 치며 화엄경을 설했다는 전설의 화엄벌이다. 9만여 평의 넓은 초원의 절반 가량은 희귀한 산중늪이 자리하고 있다. 화엄늪이라고 부르는 이 습지는 1999년 9월 울산의 식물학자 정우규 박사에 의해 처음 보고되었다.
늪 위쪽에 따로 계곡이나 숲이 있는 것도 아닌데 초원 곳곳에서 용천수가 흘러 초원을 흥건히 적시고 있다. 바닥은 낙엽과 풀잎들이 쌓여 물먹은 스펀지 같은 이탄층(泥炭層)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스펀지와는 달리 이탄층은 일단 망가지면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 1cm 두께의 이탄층이 쌓이려면 1백년이 걸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이와 같은 산중습지가 그리 많지 않다. 강원도 용늪과 무제치늪 등 대여섯 군데 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소중한 화엄늪이다.
화엄늪의 아름다운 생명들을 보면, 그들은 천성산이 좋아서 꽃나무와 풀벌레로라도 다시 돌아와 살려고 했던 원효시대의 대중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고 그들을 보면,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잠자리 한 마리에도 원효의 얼이 서려 있는 듯하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식충식물이다. 일반적인 자연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는 곤충이 식물을 먹이로 하지만, 특수한 종의 경우는 식물이 곤충을 먹이로 한다. 그것이 바로 식충식물이다. 특히 끈끈이주걱은 뿌리가 얕아서 사람들이 조금만 밟아도 살아나지 못한다. 그나마 토양과 수질 오염에 너무 약해서 전국적으로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이탄층 사이에서 흘러나온 물은 더러 샘을 이루기도 하고, 더러 도랑도 만들면서 아래로 흐르고 있다. 물자라를 비롯해 각종 수서곤충들의 서식처이다. 평지도 아닌 산꼭대기에서 물자라를 만난다는 것은 예사로운 기쁨이 아니다. 물자라는 한 차례 짝짓기를 해서 1개의 알을 얻는다. 통상 1백여개의 알을 얻기 위해 암컷은 1백여 차례나 짝짓기를 해야하는 괴로움이 있다. 물자라의 생태를 보면, 생명은 추잡한 쾌락 끝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성스러운 희생 끝에 탄생하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곳엔 제일줄나비를 비롯하여 산지성 일반곤충들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잠자리로는 꼬마잠자리가 흔치 않게 보인다. 특정 야생동물로 지정된 표범장지뱀과 도롱뇽( 도롱농 법정에 서다
)이 관찰되고, 여러 종류의 올챙이들도 보인다. 그리고, 초식동물인 고라니와 멧토끼를 비롯하여 육식동물인 너구리와 오소리도 천성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나 다를까. 너구리가 억새밭 사이에다 배설물을 싸놓고 갔다. 머지않아 다래꽃이 화엄벌을 하얗게 덮을 것이다. 다래는 낙엽지는 활엽덩굴식물이다. 줄기의 골속은 갈색이며, 어린 가지에 잔털이 있다. 매화처럼 생긴 하얀꽃은 암수 딴 나무로 여름에 핀다.
등산로 길섶에는 꽃창포가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피어있다. 붓꽃과에 속하는 꽃창포에는 두 종류가 있다. 자주색 꽃창포는 우리 고유종이지만, 노랑꽃창포는 남의 나라 것이다. 우리 꽃창포는 전국의 산과 들의 습지에 자생하며, 뿌리줄기로도 번식되지만 씨앗으로도 잘 번식된다.
머리 위로 참매 몇 마리가 맴을 돈다. 참매는 예로부터 꿩사냥에 사용해 온 대표적인 사냥매이다. 그러나 오늘날엔 그 숫자가 줄어들어 보기 힘들다. 그 매가 천성산에 서식하고 있다는 것은 이만저만 반가운 일이 아니다.
산꼭대기 나무 위에 몇 마리 까마귀가 앉았다가 가볍게 창공을 날아오른다. 신라인들은 상서로운 새라고 해서 대보름날 약밥을 지어 까마귀에게 보은했다. 신라문화가 일본으로 전해져서 일본도 까마귀를 상서로운 새로 여기게 되었고, 심지어는 애완용으로 키우기까지 한다. 울음소리야 다를 바 없지만, 일본인들은 까마귀 울음소리를 ‘가와이 가와이’로 표현한다. ‘가와이’라는 말은 ‘예쁘고 귀엽다’는 뜻이다.
최근 천성산이 또다른 근심에 휩싸였다. 정부의 고속철도가 천성산 심장을 뚫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속전철의 천성산 관통은 수맥변화와 지반침하를 일으켜 화엄늪지대를 파괴하며, 천성산 숲과 계곡을 급속하게 망가뜨릴 것이 뻔하다.
산은 뭇생명들의 집덩어리이다. 산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고 그곳에 사는 야생동식물들이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일수록 자연에 대한 겸허한 마음이 필요하다. 조상들은 산을 ‘오른다(登山)’하지 않고, ‘든다(入山)’라고 하였다. 꼭히 등산이라는 말을 써야 할 때는 ‘등고(登高)라는 말을 썼다. 등고란, 산을 오르는 게 아니라 그 산의 높이를 오르는 것이다. 그걸 생각하고 산에 오르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문의 : 055-374-6466 (내원사 종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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