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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reece | 즐거운 구름들┃《26》 그리스를 떠나며

마니쏘리 2010. 3. 28. 00:27

★ greece | 즐거운 구름들┃《26》 그리스를 떠나며
2007.05.16 16:30
http://tong.nate.com/lgc711/37759650

 


 

 

친구여,

 

 

산토리니의 아름다운 빛의 사진들이다.

 

 

지중해로 출발하면서 부터 좋은 날씨여서,

 

젖은 빨래를 말리듯이

 

나는 햇빛의 뜨거운 호사를 누리고 있다네.

 

 



 

 

 

빨래줄에 매달은 집개에

 

나를 걸어두고

 

눅눅하고 젖은 편지로만 살아온 나의 일기장을

 

하루종일 펄럭펄럭

 

말렸다네.

 

 


 

 

이 빛속에서

 

살았던 날과,

 

앞으로 걸어가야할 계단,

 



 

 

그리고

 

남은 육체의 노동과

 

멈추고 싶은 방랑을 생각하여 보았다네.

 



 

 

일꾼은 죽으면 어깨부터 썩는다,

 

 

아버지는 늘 말씀 하셨다네.

 

 

햇살에 태운 육신으로 살아라,

 

아버지는 늘 말씀 하였다네.

 

 

그러나 하얀 피부로 살아왔던 나는,

 

그리스의 일주일을 햇살에 나를 구웠다네.

 

 

 

이 푸른 지중해에서 뱃놈이 되어

 

하루종일 햇살에 내 몸뚱아리를 그슬리고 태워 일하면서 번돈으로

 

사랑하는 그녀에게 날마다 꽃을 사주고 싶어했던,

 

 

나의 지중해.

 

 

그래서 난 늘 '지중해를 가야겠다' 술이 취하면 노래 했지.

 



 

 

 

그렇지만 사랑하는 나의 친구여,

 

 

넘치는 햇살과  푸른 지중의 아름다운 교회

 

그것이 그리스의 전설이라면,

 

짐을 챙기며 나는 알았다네.

 

 

빛이 있다.

 

빛이 있다고 치자.

 

 

강한 햇살이 내리 비추는 이 지중해에,

 

그 누구도 그림자를 보았다는 사람이 없다는 아이러니를.

 



 

 

 

아폴론적인 것이 있다면,

 

반드시

 

디오니서스적인 것이 있다.

 

 

이 둘은 언제나 역사에서 충돌한다.

 

 

빛이 있으라,

 

 

하는 순간에

 

 

그림자가 생겼다.



 

 

 

나는 빛과 어둠,

 

소란과 고요,

 

시작과 끝,

 

헬레니즘과 히브라임의

 

그 충돌에 대해 <짐을 싸면서> 생각해본다네.

 

 

 

빛과 어둠의 충돌에 대해,

 

그 효용을 단 한번도 검증 하지 않고 인류 역사상 폐기처분해 버렸던,

 

어둠의 한계효용에 대해 생각 해 보았다네.

 

 

 

이 지중해에서

 

니체가 그렇게도 좋아했던

 

리하르트 와그너의 그의 전설적인 연작 오페라 리베룽겐의 반지를 듣고 싶어 졌다네.



 

 

 

 

 

빛이 있다면

 

어둠 또한 깊다.

 

 

 

 

나는 빛이 구워낸 또하나의 신화,

 

 

이집트로 떠난다네.

 

 

 

 

 

 

 

justinKIM

 



 

추신/

 

헬레니즘과 히브라임,

혹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서스적인 것에 관한,

혹은

원천적인 그리스 신화와 그로 인하여 파생된 오늘의 현대 문명에 관한,

그리스인의 예술 사고구조---에 관해

젊은 날 나를 그렇게도 매료 시키던,

프레디리히 니체의 글을 찾아 보았으나,

마땅한 글이 없었네.

 

여행길이라 미진하지만,

돌아가서 소주한잔 나누며 지중해 이야길 하려거든,

아래 보낸 비평이라도 좀 읽어 주게나.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 관한 북-크리틱으로는 아주 정갈하게 정돈 된 듯 싶으네,

감추어 보내겠네, 친구여.

젊은 전창배교수의

귀한 원고라네.

읽고 버리지 말게나. justinKIM

 

 

 

 

 

 

[덧붙임]

 

 

 

 

 

 

프리드리히 니체 『비극의 탄생』

                                 

 

 

전창배(외국어대학 독어학과 교수)

 

 

   니체의 『비극의 탄생』의 원제는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으로 1869년부터 1871년까지 그리스 고전 비극에 대한 연구와 리햐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의 음악극(Musikdrama)에 대한 연구결과를 종합하여 1872년 발표한 것이다. 여기서 니체 는 그리스의 예술을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바탕 위에서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양분하여 이해하고 있다. 아폴론적인 것이란 그리스 신화의 빛과 의술의 신 아폴론으로 상징되는 것으로 이상향의 세계를 비유하며,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란 역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로 상징되는 도취와 무아지경의 세계를 비유하고 있다. 이처럼 니체는 그리스 예술의 양식을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라는 두 신의 세계로 대비하여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세계의 결합으로부터 바로 그리스의 비극이 탄생한 것으로 니체는 보았다. 즉, 그리스 비극은 아폴론적인 미의 세계와 디오니소스적인 진리의 세계 사이의 중간세계에 존재하는 예술 장르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바로 이러한 비극에 의해 부정적 세계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니체는 주장하고 있다.

 

   니체가 언급하는 그리스 신 아폴론은 로마 신화에서 아폴로에 해당하며, 디오니소스는 로마신화의 바카스와 동일한데, 아폴론은 아름다움과 절제의 신이며, 디오니소스는 술과 풍요의 신이다. 그래서 아폴론은 법과 도덕을 주관하며 인간에게 절제를 가르친다면, 디오니소스는 인간의 존재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힘으로 작용한다. 즉, 인간의 밝고 명정한 의식의 세계를 아폴로가 대변한다면, 디오니소스는 인간의 무의식 세계를 포함하는 원초적인 우주적 세계를 담당한다. 바로 이러한 두 신의 결합을 통해 그리스의 비극이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니체는 이 『비극의 탄생』에서 크게 두 가지를 추구하고 있다. 그 하나가 예술을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양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크라테스적인 세계관에 대한 비판이다. 니체에 의하면 예술의 장르가운데 조형예술은 아폴론적인 것이며, 비조형예술인 음악은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속한다. 특히 그리스의 비극은 디오니소스의 합창이며, 이 합창은 바로 아폴론의 조화와 질서의 세계를 배경으로 창작되어 탄생한 것으로 주장한다. 그리고 이 비극의 가운데에는 디오니소스를 동반하는 실레노스의 비관적 진리가 자리하고 있다. 즉, 실레노스는 그리스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지혜를 알려준다. 너에게 가장 좋은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좋은 것은 곧 죽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은 인간의 삶을 직접 체험하며 인간의 존재에 대해 고뇌하는 디오니소스의 형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디오니소스가 인간 존재의 비극을 극복하고 인간의 운명을 위로해 주는 기능을 가진 것으로 니체는 주장하고 있는 점이다. 즉, 태초부터 인간이 감내해야 할 존재의 고통과 삶의 불합리성에 직면하여 인간은 자칫 비관적 자세로 삶을 일관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인간 존재의 비극적 운명에 맞서 현실세계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야하며, 그럼으로써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야 한다는 의미가 바로 니체의 디오니소스신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는 우리가 니체에게서 새로이 인식해야할 중요한 사항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합리적 이성주의와 낙관주의에 입각한 소크라테스적 세계관이 종말에  달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오늘날의 인간은 소크라테스적 인식이 그 한계에 이르렀음을 예감하고 있다. 그리고 이 한계점에서 인간에게 새로운 형태의 인식을 발견하는데, 이것이 바로 비극적 인식인 것이다. 즉, 인간의 존재는 비극적인 것이며, 이러한 비극적 운명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예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니체에 의하면 이성중심의 과학적 세계관이 그 한계에 부딪힌 오늘날, 예술은 이제 형이상학적 차원으로 승화하여 인간에게 영혼의 위로를 가져다주는 기능으로 작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중세시대에 교회가 꾀했든 기독교적 세계관의 보편화가 실패로 돌아가고, 그 뒤를 이어 근세부터 과학이 추구했든 합리적 이성주의 세계관의 극대화 또한 막다른 골목에 귀착하고 만 지금, 현대인에게 위안과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오로지 예술밖에 없는 것으로 니체는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술이 바로 바그너의 음악과 악극에 훌륭하게 형상화되었다고 니체는 극찬한다.

 

   우리는 이러한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서 인성에 비추어 다음과 같은 주요한 메시지를 읽어내게 된다. 우선 니체가 언급한 두 신(神),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는 바로 인간의 내면세계에 태초부터 존재하고 있는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각각 상징하고 있으며, 모든 인간은 이러한 두 개의 힘에 의해 그 운명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폴론이 이성의 세계관을, 디오니소스는 감성의 세계관을 대변하고 있으며, 이 둘의 조화를 통한 새로운 세계관의 형성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할 바임을 시사하고 있다. 다음으로 예술에 대한 우리의 자세에 관한 것으로 예술이 단지 우리의 미적 취향을 충족시키거나, 혹은 우리의 인식의 지평선을 넓히는 것으로만 작용하지 아니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에게 심신의 위안과 영혼의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이상향의 세계와 모순과 혼돈으로 가득 찬 현실세계 사이의 갭을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