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일 전투 기간에 치마 안 입은 여성 단속
150일 전투 기간에 치마 안 입은 여성 단속 |
|
여성들 단속 피하려고 바지 위에 치마 걸쳐
여성들이 강제에 못 이겨 치마를 입다 보니, 치마가 없는 여성들은 밖에 나갈 때마다 치마를 빌려 입고 가야 한다. 어떤 여성들은 바지를 입고 그 위에 마대 자루 같은 치마를 덧입는다. 지난 6월 12일, 평안남도 남포에 사는 리옥화(30대)씨는 다음 얘기를 들려주었다.
“일주일 동안 아침 청소 당번이라 새벽 5시 반에 빗자루를 들고 거리에 나갔다. 마침 그 시각에는 남루한 옷차림의 남자애 꽃제비 5명이 마대를 손에 들고 오물장을 뒤지고 있었다. 다른 한 쪽에선 남자 규찰대가 나와 자전거에 짐을 싣고 다니는 사람들을 일일이 불러 세워 검사하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까 또 다른 규찰대가 나와 이제 여자들의 복장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한 남자 규찰대원이 남새 장사하러 시골에서 막 올라온 것 같은 여자들을 불러 세웠다. 그는 왜 바지를 입고 나다니느냐며 버럭 소리부터 질렀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자들이 일제히 허리춤을 만지작거렸다. 그랬더니 둘둘 말아 올렸던 치마가 바지 위로 내려와 바지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남자 규찰대원은 일순 멍한 표정이 되더니 턱짓으로 그만 가보라고 했다. 여자들이 몇 발자국 못 가 저희들끼리 폭소를 터뜨리며 웃었다. 그 웃는 모양이 내가 보기에도 얼마나 통쾌한지 몰랐다. 그때 등 뒤에서 ‘고양이 담배 한 갑 건졌다 생각했더니 아침부터 김샜구만’이라며, 낮게 투덜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꽃무늬 치마 입어도 사상 투쟁 대상
여성들이 치마를 입었다고 해서 다 괜찮은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멋 내는 데 관심이 많은 젊은 여성들은 짧은 치마나 알록달록한 꽃무늬 치마를 즐겨 입기도 하는데, 이 모두가 단속 대상이요, 사상 투쟁 대상이 된다. “조선 사람의 체질에 맞고 고상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이 치마”라며 바지를 못 입게 하지만, 짧은 치마나 꽃무늬 치마는 “사상이 썩은 녀자들이 입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또 바지 중에서도 쫑대 바지(쫄바지)나 나팔바지 등 모양을 낸 바지들은 “우리나라 식이 아니라, 저속한 자본주의 방식”이기에 철저히 배격된다.
평안북도 신의주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한명주(가명, 20대)씨는 얼마 전 바지 단속에 걸려 벌금을 물고 나왔다. 그는 “우리나라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단속하지 않는 게 없다. 머리를 길면 길어서 안 되고, 풀면 풀어도 안 되고 직발(스트레이트파마)도 못하게 한다.
우리 같은 나이에 제일 희망하는 건 자유와 미(美)가 아니겠는가. 아무리 단속한다 해도 이 눈, 저 눈을 피해, 기를 쓰고 따라하고 마는 것이 젊은 사람들이다. 이런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서화영(가명, 20대)양도 “남의 나라 풍습이라고 해도, 좋으면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니냐. 왜 우리나라 것만 최고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오이를 거꾸로 먹어도 제 멋이라는데, 짧은 치마를 입던 쫑대 바지를 입던 상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한다. 이렇듯 청년들은 “류행을 따라하지 말라고 하면 기어이 하고 마는 게 청년들”이라며 단속이 아무 효과가 없다고 말한다.
[논평] 치마를 입고 싶어도 입기 어려운 북한 여성의 삶
북한에서 150일 전투 기간 동안 바지 단속을 바짝 더 조이고 있다. 치마를 입지 않은 여자들은 장마당 장사는 물론 물건을 구입하러 시장에 출입할 수도 없고, 잡혀서 벌금을 물거나 강제노동에 동원시킨다고 한다. 여성들은 150일 전투 기간에 생산성을 높이자면서도 일하기 편한 바지보다 불편한 치마를 입으라는 당국의 지시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1986년 2월 어느 금요일이었다고 한다. ‘금요 로동’이 있는 날이라 그날따라 작업복을 걸친 여성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고 한다. 이를 본 최고 지도자가 “금요로동을 한다고 해도 바지는 가방에 넣고, 외출할 때는 깨끗한 치마를 입고 다녀야 합니다. 평양시 거리에서 (여성들이) 바지를 입으면 보기에 좋지 않습니다”라고 한 뒤부터 바지 단속이 시작됐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바지 단속은 법적 근거도 불분명한데다 주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다. 한 단속원은 “바지 단속이 제일 쉽고 부담이 없다. 크게 돈 버는 건 없지만 녀자들을 희롱하는 재미도 있고, 얘기도 나눌 수 있고 하니까 젊은 남자들이 서로 규찰대로 나가겠다고 할 정도”라고 말한다. 단속 과정에서 남성 규찰대들의 무례하고 과도한 단속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대부분 여성들이 바지보다 치마를 입을 때 훨씬 아름다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국의 모든 여성이 옷을 입고 거동하는데서 불편을 호소하게 만드는 것은 지극히 여성 차별적인 사회의 병폐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관철되기 위해 중간 간부들은 공연히 바빠지게 되고 바지를 입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때문이다.
노동량이 많은 여성들은 바지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국가의 경제가 발전하고 먹고 사는 것이 나아지면 자연스럽게 외모에 대한 관심과 투자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현재 배급이 없어 가족 전체를 부양해야 하는 여성들에게 장마당 장사까지 통제하면서 150일 전투에 내몰고 있는 북한 정부가 뜬금없는 바지 단속까지 시행하고 있다. 당국은 치마를 입고 멋을 내고 싶어도 생계를 위해 1년 내내 일하고 장사하느라 바지밖에 걸치지 못하는 북한 여성들의 어려운 처지를 걱정해야 할 때다. 이런 단속은 폐지되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