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1961년
감독: Robert Wise / Jerome Robbins
주연: Natalie Wood/ Richard Beymer/ George Chakiris
음악: Leonard Bernstein 외
1594 년으로 추정되는 16세기 말에 문자로 태어나 연극과 무용극을 비롯하여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공연의 주제가 되고, 1911년에서부터 오늘날까지 모두 30번 이상 영화화가 되었던 William Shakespeare (1564-1616, 영국)의 불멸의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이 현대의 뉴욕으로 무대를 옮겨 뮤지컬로 다시 태어났다.
북부 이탈리아의 예술의 도시, 베로나(Verona)가 뉴욕(New York)으로,
그리고 서로 반목하던 캐플릿(Capulet)과 몬태규(Montague)의 양가의 싸움은 제트파(The Jets)와 샤크파(The Sharks)의 길거리 싸움으로 바뀌고, 로미오(Romeo)는 토니(Tony)로, 줄리엣(Juliet)은 마리아(Maria)로 변신을 하면서 1957년 9월 26일에 브로드웨이 윈터 가든 극장에서 초연이 되었다.
734회 공연이라는 장기흥행에 성공한 이 뮤지컬은 오클라호마(1943년-1953년), 남태평양(1949년-1958년), 왕과나(1951년-1956년), 사운드 오브 뮤직(1959년- 1965년)같은 미국 뮤지컬 황금시기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러했듯이 1961년에 할리우드 뮤지컬로 다시 만들어 졌는데, 1962년도 제34회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하여 무려 10개 부문의 상들을 휩쓸며 대성공을 거두면서 또 다시 무대 뮤지컬 극까지도 인기몰이를 계속하는 시너지효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초연 반세기가 되는 오늘날에도 무대공연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뉴욕 링컨센터가 서있는 자리를 비롯한 뉴욕 웨스트 61번가에서 촬영을 시작한 영화의 제작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아서 중도에 감독을 교체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였는데, 전체의 60%를 완성한 Jerome Robbins가 촬영 지연 등의 이유로 억울하게 해고가 된 후, 제작자이면서도 후임감독이 된 Robert Wise가 오히려 더 각광을 받으면서, 4년 후,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의 감독까지 맡게 된다.
여하튼 아직까지도 이 영화는 뮤지컬로서는 최다의 수상작이라는 명예와 함께 두 명의 감독이 오스카상을 같이 수상한 유일한 영화라는 특이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줄거리]
미국의 자치령이 되면서 푸에르토 리코의 사람들이 대거 이민을 와, 자리를 잡고 있는 뉴욕의 웨스트사이드 거리엔 푸에르토 리코 젊은이들의 패거리인 샤크파(The Sharks) 와 본토 토박이들의 패거리, 제트파(The Jets)와의 반목과 갈등이 그치질 않고 있다.
서로 지역을 장악하고 넘버원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하는 양파의 젊은이들.
제트파의 리더,리프(Riff, Russ Tamblyn, 1934, 미국 LA)는 그래서 지금은 Doc's 캔디 샵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원래 조직을 함께 만들었던 토니(Tony, Richard Beymer)의 협력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을 하고, 밤 10시에 있을 동네 댄스파티에 꼭 참석할 것을 부탁한다.
한편, 반미감정이 대단한 샤크파의 리더, 버나르도(Bernardo, George Chakiris)의 여동생
마리아(Maria, Natalie Wood)는 생전 처음으로 참석하는 댄스파티 때문에 하루 온종일 마음이 설레이기만 하다.

동네 체육관에서 벌어진 댄스파티에서 운명적으로 만나 첫눈에 반한 마리아와 토니.
함께 춤을 추고 키스도 나누게 되지만, 그러나 내 동생을 건드린 제트파를 절대 용서 할 수 없다는 버나르도의 격양된 행동은 다음날 밤의 양파간의 집단 대결로 치닫고....
그러는 사이, 몰래 마리아를 만나 사랑의 약속을 나눈 토니가 이들의 싸움을 말리려고 무척이나 애써보지만, 오히려 패싸움의 현장에서 친구인 리프를 칼로 찌른 버나르도를 순간적으로 살해하게 된다.
연인에서 졸지에 이제는 원수사이가 된 마리아와 토니.
그러나 결코 서로를 잊지 못하는 두 사람은 먼 곳으로 함께 도망을 가자고 울면서 약속을 하게 되는데, 하지만, 잠시 후 복수를 하러 달려온 샤크파의 치노가 쏜 총탄에 토니는 끝내 길거리에 쓰러지게 되고 마리아의 품안에서 운명을 달리하고 만다.
울부짖는 마리아를 사이에 두고 다시 대치를 한 양파의 젊은이들.
그러나 일촉즉발의 순간에 마리아의 눈물어린 호소에 다들 마음이 녹아 서로 화해를 하게 되고 또 함께 토니의 사체를 운구하게 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모두 죽는 셰익스피어의 원작과는 달리 뉴욕의 줄리엣, 마리아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양파의 젊은이들을 화해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는 이작품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대무용과 발레, 그리고 매우 다양한 음악들과 긴박한 줄거리 전개로 그동안 고전극, 로미오와 줄리엣이 지루하다고 불평을 하던 젊은이들까지도 단숨에 매료시키고 말았다.
원래, 1949년부터 준비를 한 이 영화의 제작 전 스크립트에는 ‘이스트사이드 스토리’라는
제목으로 카톨릭 신자인 아일랜드계 이민 청년과 유태인 소녀의 사랑을 그리며, Elvis Presley 와 Audrey Hepburn을 주인공으로 내정을 했었다고 하지만, 같은 해의 ‘초원의 빛’(Splendor In The Grass, 1961)과 이 영화로 인해, 매우 청순한 이미지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나탈리 우드의 캐스팅은 제작자가 기대한 이상의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고, 1961년을 그녀의 해로 만들게 된다.
또한 나탈리 우드와 함께 유창한 스팽글리쉬(Spanglish)를 구사하며 열연을 펼친 조지 차키리스 역시 14년간의 무명의 설움을 단 한방에 날려버리고, 부베 의 연인 (1963)으로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계속 대단한 인기를 얻게 되었다.
짧은 역사의 미국이 무척 자랑을 하는 명 작곡가 겸 지휘가, Leonard Bernstein (1918-1990, 미국 로렌스)이 작곡을 하고, Stephen Sondheim (1930, 미국 뉴욕)이 작사를 하여 완성한 브로드웨이 버전의 음악들에다 몇 곡을 추가하여 영화에 사용을 하면서 또 다시
여러 곡의 히트곡을 양산한 이 뮤지컬의 음악들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 뉴욕 시내를 공중에서 촬영한 그래픽 화면과 함께 프롤로그와 서곡(Overture/ 아래 음악)으로 함축이 되어
관객들에게 미리 선을 보인다.
* MARIA
* AMERICA
미국에 이민을 왔으니 이제 우리도 미국인같이 자유롭고 풍요롭게 살아보자는 푸에르토 리코 여성들의 주장에 버나르도를 비롯한 샤크파 청년들이 반론을 제기 하면서 서로의 주장을 경쾌한 리듬의 노래와 춤으로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다.
* I FEEL PRETTY
* SOMEWHERE
노래를 시작한다.
Somewhere, Someday, Somehow 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 이중창의 가사가 이들 젊은
연인의 절박한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The King And I’(1956)와 ‘An Affair To Remember’(1957)에서는 Deborah Kerr의 노래를, My Fair Lady (1964)에서는 Audrey Hepburn의 노래를 대신 더빙하였고,
그리고 ‘Mary Poppins’(1964), ‘The Sound Of Music’(1965)에도 출연을 한바 있는 소프라노, Marni Nixon(1930, 미국 CA)이 이번에도 나탈리 우드의 노래를 대신 불러주었는데,
특히 Tonight에서의 그 아름다운 음색은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한편 토니의 목소리도 엘비스 프레슬리와 함께 영화에도 출연을 한바가 있는 Jimmy Bryant (1929, 미국 앨라바마)가 대신 더빙하였다.
이민에 의해 나라가 세워지고 또 그 이민을 온 사람들에 의해 번성을 해온 미국이 최근에 반이민법이라는 것을 만들면서 나라 전체가 무척 시끄럽지만,
미국의 자치령이 된 후에 물밀듯이 밀려오던 푸에르토 리칸 이민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 작품이 만일 오늘날에 만들어졌다고 하면 아마 멕시칸 이민들이 그 주인공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튼, 사운드 오브 뮤직(1965)과 함께 역사상 최고의 뮤지컬로 손꼽히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이 작품으로 인해 1960년대는 진 켈리나 후레드 애스테어가 활약했던 1930-40년대보다도 오히려 더 훌륭한 미국 뮤지컬영화의 최대의 전성 시대로 아직 까지도 불리고 있다.
거기다 엘비스 프레슬리나 클리프 리처드 그리고 비틀즈같은 거물급 스타들이 출연을 계속 하였던 당시의 음악 영화 시리즈들에다 비치 파티(1963)같이 초기 랔큰롤 음악의 매력이 가득 찬 그 시절의 청춘영화들은 1960년대가 역사상 음악적으로도 얼마나 다양한 보고 들을 거리를 제공한 최고의 시대였는지를 증명을 하면서, 이런 지나간 1960년대의 황금시기를 그리워하는 이유가 단지 복고적인 향수만이 전부가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쉬운 점은 이런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타일의 아름다운 영화들이 근래에는 전혀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이고, 그래서 한편 으로는 요즈음 2000년대의 십대들은 좀 안 됐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