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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실크로드여행 ‘그저 가고 또 가고

마니쏘리 2010. 3. 28. 00:10

중국 실크로드여행 ‘그저 가고 또 가고
2007.05.16 16:38
http://tong.nate.com/lgc711/37759915
카시~카라쿨 호수~허텐~우루무치 간 파미르고원과 타클라마칸 사막 횡단


▲ 파미르 고원의 양떼와 목동.

10월19일(수) 맑음, 카라쿨 호수. 아침 6시에 모닝콜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6시 반이나 되어 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으니 비몽사몽간에 "Hello! This is morning call"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늦게 울려 당황했지만 그래도 이 사람들 시간으로는 새벽 3시밖에 안 되니 미안한 생각에 “Thank you" 하고 끊고는 부리나케 준비를 했다.

먼저 내려간 강응상 선생이 식당이 어딘지 모르겠다고 도로 올라오신다. 양숙씨와 내려오며 로비에 가서 물어보자고 한다. 직원에게 ”Where is restaurant?" 했더니 2층으로 가라고 손짓한다. 2층에 올라가니 사방이 깜깜하고 불 켜진 곳이 없다. 한쪽 방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나오기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훨훨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한 남자가 한창 지지고 볶고 하느라고 사람이 들어온 줄도 모른다.

다시 나와 테이블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니 한 여직원이 와서 불도 켜고 준비를 해준다. 오전 8시 출발이라고 하여 부리나케 식사를 하고 짐을 챙겨 로비로 나오니 버스가 오지 않는다. 길이 좁아 작은 차 두 대로 가기로 했는데 한 대만 와 있다. 여권에 파란 딱지 붙은 사람들은 차에 오르고 빨간 딱지 붙은 우리들은 다시 로비로 들어오니 김 사장이 버스가 오다가 고장이 났다며 30분이면 온다고 했다. 결국 오전 8시50분이나 되어 출발했다.

위풍당당한 순백의 설산 무즈타그아타

카라쿨 호수까지는 왕복 10시간이 걸린다. 그나마 중국과 파키스탄을 잇는 카라코룸 하이웨이가 개통된 덕분에 가능해졌고 한다. 도로 가에는 백양나무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우리나라 미루나무와 비슷하게 생겼다. 하지만 줄기가 하얀 게 자작나무 같고, 잎은 단풍나무처럼 갈라져 있다. 이 백양나무는 여기뿐 아니라 신장자치구 전체에 늘어서 있었는데, 금방 목욕하고 나온 여인의 살결 같이 눈부시도록 흰 줄기가 인상적이다.
▲ 카시에서 허텐으로 가는 포장도로. 이동거리는 540km다.

가는 길에 지루하다고 김창묵씨가 노래를 불러준다. 예술학교를 다녀서 그런지 목소리도 구성지고 노래도 썩 잘 했다. 계속 더 가니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산뿐이다. 그래도 가끔 물이 흐르는 곳에는 메마른 풀들이 약간씩 자라고 있다. 특히 오채산이란 곳은 바위 색깔이 검은 색, 붉은 색, 노란 색, 분홍색, 회색 등 말 그대로 오색찬란했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말 없는 산을 바라보며 몇 시간을 달리자니 머리 속에 아무 단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수백만 년, 수천만 년 아무 말 없이 서있는 산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랴 싶고, 이런 세상을 만드신 조물주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세상 구경시켜 줬으면 됐지 더 이상 무얼 바라나 싶고, 이런 세상에 나온 우리는 무지무지 행운아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저 나를 받아주고 그 품 안에 안아준 산에게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넋을 잃고 바라보며 몇 시간을 달리니 국경 근처 여권 검사하는 곳이 나타났다. 우리는 내려 건물 안에 들어가 검사를 받고 버스는 반대편에서 우리를 기다렸다. 막간을 이용해 화장실에 가려고 조그만 구멍가게로 들어가서 아가씨에게 toilet, WC, 세수간 별 소리를 해도 못 알아듣는다. 쉬이~ 했더니 웃으며 뒤로 돌아가라고 가르쳐준다. 건물 뒤로 돌아가니 그냥 노천 화장실이었다. 여기 저기 오물 사이를 지나 볼 일을 보고는 버스로 되돌아왔다.
▲ 허텐의 농촌시장.

다시 출발해 얼마를 가니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며 거대한 호수가 나타나고 호수 옆에는 순백의 설산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하나는 무스타그아타이고, 하나는 콩구르란다. 무즈타그는 빙산의 아버지란 뜻이란다. 그리고 카라쿨이란 검다는 뜻이라고 했는데, 호수의 색깔이 햇볕에 따라 일곱 가지로 변한다고 한다.

주변 경관에 압도된 우리는 밥 먹을 생각도 안 하고 사진을 찍어댔다. 김 사장이 빨리 식사하라고 재촉하는 바람에 모두들 식당으로 들어가 뚝딱 해치우고는 또 나와 설원 위를 걸어다녔다. 대장은 말을 타고 눈부신 설원 위를 달렸고, 우리는 더 늦으면 눈이 녹아 되돌아가지 못 한다고 김창묵씨가 채근해 겨우 버스에 올랐다.

돌아오는 길에도 설산에 정신을 뺏겨 경관을 보기 바빴다. 조수경씨는 조수석에서 더 잘 보인다고 맨 앞의 조수석에 앉아 일어설 줄 몰랐다. 조수경이 조수석에 앉았는데 누가 감히 일어서라 하겠는가?
땅도 검고, 사람도 검고, 집도 검고, 옷도 검고

▲ 허텐의 마리크와티 고성. 흔적만 남아 있다.
10월20일(목) 맑음. 카시에서 허텐으로. 아침에 일어나 떠나기 전에 대장이 카시에는 볼 것이 없냐고 물으니 반초성이 있단다. 반초는 청나라 장군으로 카시성을 공략한 사람인데, 그 승리를 기념해 석상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이른 아침이라 문이 안 열린 관계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냥 허텐으로 출발했다. 허텐까지는 540km로 8시간이 소요된단다. 하도 이동하다 보니 이제 9시간 10시간은 보통이다 싶다.

가도 가도 사막이니 노상방뇨는 기본이다. 버스에서 내리면 주변을 관찰한 다음 자연스럽게 여자들은 오른쪽, 남자들은 왼쪽으로 지형지물을 이용해 볼 일을 보았다. 여자 20여 명이 일렬로 쭈그려 앉아 허연 엉덩이를 내놓고 사막에 물을 주는 것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지만 명예훼손 죄로 걸릴까봐 간신히 참았다.

얼마 더 가다가 갑자기 전방에 큰 호수 같은 것이 나타났다. 주위에 나무 한 그루도 없어 이상하다 했더니 그게 바로 신기루란다. 또 조금 가다보니 작은 호수가 나타났는데, 이것은 점점 길어지더니 강물처럼 보이다가 사라졌다. 신기루는 빛의 굴절현상 때문에 나타난다고 하는데, 뜨거운 여름날 아스팔트길을 달리다 보면 물이 고인 것처럼 보이다가 가까이 가면 없어지는 것도 작은 신기루 현상이라고 한다.

또 얼마를 달리다가 재래시장이 보여 구경했다. 양고기도 매달아 놓고 목화솜을 잔뜩 실은 당나귀 마차들이 한 곳으로 집결하고 있었다. 목화솜 경매라도 하는 모양이다. 대장은 디카로 사진을 찍어 주민들에게 보여주니 할아버지들의 주름진 얼굴에 함박웃음이 가득 퍼졌다.
▲ 허텐 시장의 목화 수매장.

얼마를 더 달리니 아만니사한 묘다. 아만니사한이란 여자는 왕비로서 전래음악을 모아 편찬한 사람이란다. 34세에 아기를 낳다가 죽었다는데, 초상화를 보니 절세미인이다. 미인박명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재수 없으면 90살까지 산다는데, 이 말대로라면 나는 100세도 넘게 살 것 같다.

신강성 사람들을 보면 땅도 검고, 사람도 검고, 집도 검고, 옷도 검고, 도무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사람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실감난다. 인간이란 잠시 뭉쳐졌다 허물어지는 흙이요, 수면에 잠시 떠올랐다 사라지는 물방울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저리 가라

▲ 실크로드 전 구간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백양나무 가로수.
10월21일(금) 맑음. 허텐. 갈수록 오지로 들어가다 보니 호텔 시설도 갈수록 낙후됐다. 허텐의 호텔은 별이 세 개라고 하는데도 벽에 샤워기 하나만 달랑 매달려 있고, 아래로 나오는 수도꼭지도 없다. 요새는 볼 일을 보면 물로 씻어야 직성이 풀리는 버릇이 생겨 꼭 씻기는 씻어야겠는데, 샤워기를 틀면 옷이 다 젖을 것 같아 곰곰이 생각하다가 평소에 암벽타기 하던 실력으로 세면대로 기어 올라 씻고나니 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잘 닦아놓았다.

볼 일까지 무사히 마치고 호텔을 출발해 마리크와티 고성을 향했다. 고성 가까이 가니 한 떼의 당나귀 마차가 길을 막고 앞서간다. 입구에 도착하니 서로 자기 당나귀를 타라고 난리다. 원래 두 명씩 타는 마차를 한 명씩 타서 거기 있는 마차를 모두 타 주기로 했다.

이 고성은 당나라 때 번성했다가 당나라 말기에 망했다고 한다. 다른 고성처럼 벽들만 조금 남아있다. 흙으로 된 성벽에 올라가 사진을 찍고는 다시 당나귀 마차를 타고 나왔는데, 꼬마 여자 아이가 좇아오며 장갑 달라 머플러 달라 성화여서 장갑만 벗어주고 내렸다. 다른 회원들도 이것저것 다 빼앗겼단다. 한 번 더 탔다가는 껍데기까지 다 벗게 생겼다.

고성에서 나와 이번에는 무화과나무 왕을 보러갔다. 이 무화과나무는 옛날에 한 농부가 예쁜 아가씨와 결혼했으나 수년간 애기가 없어 곤륜산으로 약초를 캐러 갔는데, 한 노승이 지팡이를 주며 이것은 서왕모가 준 것이니 가져가라고 하더란다. 그 지팡이를 집에 가져와 땅에 꽂으니 하루만에 뿌리가 내리고 사흘만에 열매가 열려 부인이 이 열매를 먹으니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단다.

▲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상에서 가장 긴 포도밭 길.
그런데 무화과나무가 마당에 가득 차서 도대체 어떤 게 왕나무냐고 물으니 전체가 한 그루란다. 이 무화과나무를 일곱 번 돌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하기에 나도 우리 며느리 애기 낳게 해달라고 속으로 빌며 일곱 바퀴를 돌았다. 효험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무화과나무를 보고 긴 포도나무 터널을 지나 요타간 유적지를 보러갔다. 말이 유적지지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모두 목화밭으로 변한 곳에 단지 많은 유물이 나왔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허텐의 청진사(힌두교 사원)를 보러 갔다. 마침 예배객들이 꾸역꾸역 쏟아져 나와 거리를 가득 메워 안으로 들어갈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거리에는 물건을 팔려는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로 귀청이 찢어질 지경이다.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저리 가라였다.

청진사까지 다 보고는 민펑으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평화로이 풀을 뜯는 양떼를 보니 문득 양은 왜 사나 싶었다. 인간에게 잡아먹히려고 사나. 하다가 그러면 인간은 왜 사나. 죽으려고 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차라리 안 태어나는 것이 좋을까. 아니다. 그래도 이 세상을 바라본 것만으로도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다 싶었다.

얼마를 더 가니 마침 지평선으로 해가 진다. 떠오르는 해는 한 생명이 태어나는 것 같아 희망찬 모습인데, 지는 해는 한 인생의 막이 내리는 것 같아 처연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 민펑의 타클라마칸 사막.
이 엄청난 목화가 다 어디로 팔려가는지

10월22일(토) 맑음. 민펑. 아침에 일어나 로비로 내려가 한국으로 엽서를 부칠 수 있나 물으니 영어도 못 알아듣고 김창묵씨가 물어도 못 부친다고 한다. 이 날은 쿠얼러까지 800km를 이동하는 날이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차에 올랐다. 새벽별을 보며 출발해 얼마쯤 가니 동쪽 하늘이 밝아온다. 사막에서 일출을 보려고 모래언덕을 뛰어오르니 한잠 잘 잔 듯한 기운찬 해가 지평선 위로 붉은 얼굴을 쏘옥 내민다.

일출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는 다시 버스에 올라 타클라마칸 사막 길을 달린다. 길 양 옆으로 긴 호스가 10여 개씩 늘어서 있고, 호스 옆에는 풀인지 나무인지 메마른 식물이 자라고 있다. 자세히 바라보니 호스에서 물이 조금씩 나와 모래를 적시고 있다. 사막에서 풀 한 포기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지 짐작이 갔다.

계속 달리며 사구(沙丘)의 모양을 보니 일률적으로 한쪽은 경사가 완만하고 한쪽은 급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이 경사가 완만하다더니 이 지역은 북동풍이 많이 부는 모양이다. 
▲ 허튼의 청진사(힌두교 사원).

얼마를 더 가다가 물탱크가 있는 건물 앞에서 수박을 깨 먹고는 또 모래 언덕으로 올라가 사진들을 찍었다. 한 번 내려놓으면 차에 탈 줄을 몰랐다. 한 번 내릴 때마다 사막에 물들을 주었으니 우리 덕분에 아마 타클라마칸 사막이 조금 축축해지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500km 사막을 횡단하니 드디어 사막 횡단도로의 시점 표지석이 나타나고, 중국석유에서 433km 구간에 호스를 설치해 녹화사업을 했다는 안내판이 나왔다. 거의 서울에서 부산까지 호스를 깔았다는 소리가 되니 참 어마어마하다. 낮에는 사람을 잡을 듯이 뜨겁다가도 해만 떨어지면 뼛속까지 추위가 파고드니 참 지구가 자전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을까 싶다. 지구의 반쪽은 타 죽고 반쪽은 얼어 죽었을 것이다.

사막이 끝나자 타림분지가 나타난다. 하얀 솜이 핀 목화밭이 끝없이 이어졌다. 곳곳의 목화 집산지에는 목화가 쌓여 하얀 산을 이루고 있다. 이 엄청난 목화가 다 어디로 팔려 가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는 목화밭이 없는 걸 보면 아마 우리나라 면제품도 모두 중국산 목화로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목화밭이 끝나고 하얀 눈이 내린 듯 끝없는 벌판이 이어진다. 뜨거운 낮에 눈이 내렸을 리는 없고 그게 모두 염분이란다. 이런 땅에서도 나무가 자라는 게 신기했다. 타림 강을 건너 얼마 더 가다가 주유소가 나타나자 화장실도 갈 겸 낙조도 볼 겸 차에서 내렸다. 마침 주유소 옆 물웅덩이로 양떼가 몰려와 물을 먹는데 그 모습이 또 장관이다. 양떼를 쳐다보며 찍느라 해가 언제 넘어갔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대장도 갑자기 횡재라도 한 기분이었는지 엄청 기뻐하시며 복 많은 사람들은 다르다고 했다.
▲ 민펑의 타클라마칸 사막. 중국석유회사가 나무를 심어 놓았지만, 과연 효과가 있을까?

가도 가도 끝이 없으니 대장이 나와 지리산 소설 이야기, 오세암 설화 이야기, 본인의 자서전 등등으로 우리의 무료함을 달래준다. 그래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 어느 덧 쿠얼러에 도착했다.

저녁 식사 후 김 사장과 김창묵씨가 모두 고생했다며 발 마사지를 시켜주겠다고 한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을 판이라 우리는 모두 한 호텔로 들어갔다. 30명이 넘는 인원이 갑자기 들이닥치니 마사지 해주는 아가씨가 모자랐는지 45분 한다는 맛사지가 20분씩 시늉만 내고 말았다. 회원들이 불평하자 김 사장은 김창묵씨에게 반 값만 주라고 하고는 팁으로 2불씩 걷었던 것도 주지 않고 가지고 와버렸다.

쿠얼러는 녹화가 가장 잘 된 곳으로, 길에 휴지 버리면 벌금 50원, 꽁초 버려도 50원이라고 하더니 정말 도시 전체가 깨끗하다
▲ 쿠얼러의 천문관 입구.
순천만 갈대밭 같은 연화호

10월23일(일) 맑음, 쿠얼러. 아침에 로비에 내려가 또 한국으로 엽서를 부칠 수 있는가 물으니 가능하단다. 얼마인가 물으니 5원60전씩이란다. 엽서 석 장을 부치고 버스에 올라 철문관으로 향했다. 철문관은 실크로드 상에서 꼭 지나야하는 문으로, 우리의 문경세재 제1관문 같은 모양이다. 철문관 주위 바위는 철성분이 많아 붉은 색을 띠었고, 철 같이 에워쌌다는 뜻에서도 그렇게 이름 지었다고 한다.

관문을 구경하다보니 대장은 어느 새 옆 봉우리에 올라 빨리 올라오라고 손짓하신다. 우리도 부지런히 기어 올라가니 끝없이 이어지는 붉은 산봉우리들이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대장은 또 마음이 동해서 1시간만 주면 안 되겠냐고 했더니 여기서 늦어지면 우루무치에서 바자르도 못 보고 발 마사지도 힘들다고 하여 그냥 출발했다.

철문관에서 나와 연화호로 향했다. 연화호는 여름에 연꽃이 많이 핀다는 데, 지금은 가을이라 갈대밭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유람선을 탄다고 하여 지붕 있는 선실에서 유유자적하는 줄 알았더니 모터보트라서 어찌나 추운지 완전 동태가 되는 줄 알았다. 순천만 갈대밭과 비슷했는데 호수 안에 모래섬이 있어 거기 내려 사진을 찍고 놀다가 다시 보트를 타고 나왔다. 대장은 호수 속의 모래섬이 꼭 수호지의 양산박 같다고 감탄했다.
연화호까지 보고는 서둘러 차에 올라 우루무치로 향했다. 가는 길에 황량한 산들만 이어지니 보는 것도 지쳐 비몽사몽간에 가다가 깨어 또 노상방뇨를 하고는 몸을 푼다고 대장이 국민체조를 하자고 했다. 대장 구령에 맞춰 한바탕 체조를 하고는 대장의 태권도 시범까지 감상한 후 다시 차에 올랐다. 우루무치에 도착하니 벌써 오밤중이라 바자르도 다 닫아 몇 안 되는 가게에서 또 스카프를 사들고는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두 팀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호텔로 들어가 발 마사지를 받았는데, 어제 실수를 거울 삼아 오늘은 단단히 시간 약속을 받고는 1시간이 넘게 어깨까지 마사지를 받았다.
▲ 우루무치 인민광장에서 물로 쓰는 서예 감상.
두 팀의 마사지가 다 끝나자 새벽 1시도 넘었다. 지난 번 우루무치에 왔을 때도 호텔에 몇 시간 머물지 못하고 나갔는데, 이 날도 마찬가지라며 오성급 호텔에서 얼마 못 자는 게 아쉽다고 부지런히 방으로 들어갔다.

10월24일(월) 흐린 후 비 몇 방울. 우루무치. 아침에 일어나니 처음으로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다. 비가 오려나 했더니 몇 방울 떨어지고는 말았다. 이렇게 비 오기가 힘드니 온 산에 풀 한 포기 없는 게 당연하다 싶었다.

아침 식사 후 인민광장으로 갔다. 여기저기서 기체조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광장바닥에 큰 붓으로 무엇을 쓰는 할아버지가 있어 다들 가까이 가보니 허리까지 오는 큰 붓으로 바닥에 글씨를 쓰고 있었다. 대롱에는 물이 가득 들어있고 붓 끝은 스펀지로 되어있어 물로 글씨를 쓰고 있었는데, 글씨를 어찌나 잘 쓰는지 물이 말라버리는 것이 아까웠다. 한 줄은 오른손으로 쓰고 한 줄은 왼손으로 썼는데 양 손 다 너무도 명필이었다. 이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이 광장에 나와 이렇게 글을 쓴다는 것이다. 이렇게 글씨 연습도 하고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도 어찌 보면 선을 쌓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이 모두 감탄하며 탄성을 지르자 할아버지는 더 신이 나서 글씨를 써댔다.


▲ 카시에서 파미르고원을 가로질러 도착한 카라쿨 호수(해발 약 3,700m).

광장에서 나와 카페트 공장을 견학하고 공항으로 향했는데, 열흘 동안이나 같이 지내다 보니 김창묵씨와 정이 들어서 다들 악수를 하며 아쉬워했다. 특히 최영주 선생은 가이드와 포옹하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가이드 생활도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 기대와 허탈감이 반복되는 직업이구나 싶었다. 나도 담임할 때 학년 말에 아이들이 졸업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가슴이 텅 빈 것 같아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고, 나 자신이 나룻배의 사공이 된 것 같았다. 사공이 강을 건너 주면 손님은 뒤도 안 돌아보고 갈 길을 가듯이, 학생들은 다음 목적지를 향하여 부지런히 달려가는 것이다.

우루무치에서 떠나 북경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를 갈아타고 인천공항에 내리니 서울을 떠난 것이 몇 달 전 일처럼 아득하다. 실크로드 탐방은 어땠었느냐고 묻는다면 가는 게 일이라고 해야겠다. 자고 가고, 먹고 가고, 보고 가고, 사고 가고, 놀고 가고, 누고 가고, 졸고 가고, 그저 가고 또 가고 눈만 뜨면 가는 게 이번 여행이었다.
바른소리